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와 그가 대장이라고 부르는 화자인 '나'와의 관계를 보고 있노라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토록 믿고 신뢰하며 좋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둘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충만하다. 대장은 조르바와의 생활에서 편안함과 새로움을, 조르바는 대장과의 생활에서 삶에 대한 열정과 자연성을 지킬 수 있었다. 자기의 욕구를 존중하고 인간이 가진 오감과 심장으로 생을 살아가는 조르바와는 달리 자기의 욕구를 이성의 힘으로 제어시켜 가며 머리로 살아가는 대장. 공존할 수 없는 두 인물은 서로의 다른 점에 끌리며 서로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나는 지극히 대장과 같은 사람이다. 조르바가 대장에게 3,4톤의 종이를 쥐어짰을 텐데 결국 어떤 즙을 짜낸 거냐고 물을 때는 마치 내게 묻는 것만 같았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뭐든 일단 시작하면 될 일에 나름의 확신과 근거가 필요한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형식 또한 중시한다. 고지식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이런 사람들은 조르바가 가지고 있는 인류 태초의 호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조르바와의 생활에 대해 대장은 자신의 가슴을 넓혀주었고, 그의 말 몇 마디가 자신의 고민에 절대적인 해법을 제시해 줌으로써 내 정신을 평화롭게 만들어주었다고 했다. 나 역시 조르바를 읽는 동안 머리로만 해오던 일들을 이제는 심장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흔히 욕구라고 말하며 상대적으로 가치를 낮춰 부르는 것들의 가치를 새삼 생각해 봤다. 잘 먹고 잘 자기, 사랑하기 같은 단순한 것부터,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감탄해 보기까지 내게도 조르바는 하나의 길을 보여주었다.
이런 조르바를 가장 조르바답게 만들어 준 것은 대장이었다. 조르바가 무슨 일을 하든 조르바를 믿고 지지해 준 그가 있었기에 조르바는 자신을 잃지 않고 끝까지 자신일 수 있었다. 난데없는 춤과 노래에 도 그 둘이 만드는 장면들은 어색하지 않고 유쾌하다. 우리에게 대장처럼 늘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며 내가 하는 말들에 귀 기울여 주고 지지해 주며 그 어떤 실패의 순간에도 함께 있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생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조르바와 대장의 생활을 보며 행복이라는 것이 결코 거창한 게 아니며 우리 일상생활에 놓여있는 소박 함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주인공인 '나'는 산을 오르며 맑은 공기와 가벼운 호흡, 넓은 시야가 우리 영혼에 얼마나 값진 것들을 가져다주는지 새삼 느끼고, 조르바와 함께 오랜 시간 화롯가에 앉아 포도주 한잔, 밤 한 톨, 초로 한 오두막집, 바닷소리가 주는 소박하고 절제된 것들에서 행복을 느낀다. 행복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 언제나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 행복을 발견해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 행복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조르바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선입견 없이 바라보며 새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눈과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우연히 지인들과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삶이 정말 빨리 흐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 지인이 인생은 자기 나이만큼의 속도로 흘러간다는 말이 있다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빨리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르바처럼 정신은 열리고 마음은 넓어지고 태초의 호기가 천천히 사라지도록 살아보고 싶어졌다. '나는 모든 것을 중단하고 내 인생에 단 한번 과감한 미친 짓거리를 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는 대장의 말처럼 나 역시 내 인생에 단 한번 과감한 미친 짓거리를 남겨두었다. 미친 짓거리를 해볼 수 있는 용기를 내야겠다. 바로 이 순간 삶에서 주어지는 단 한 번뿐인 오늘부터 즐길 수 있는 많은 것을 놓치지 말고 마음껏 누리며 살아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