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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l 18. 2023

나도 옛날 엄마가 그립다

14살 지구인 이야기

길을 가다 보니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담벼락을 넘어 춤을 춘다. 이게 여름이지 싶으니 여행 유전자가 발동을 건다. 중학생 아이에게 여름 방학이 디든 가자고 했다가 단칼에 거절을 당했다. 여행을 별로 가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중학생이 된 뒤로 말 그대로 변했다. 어릴 적부터 주말이면 어김없이 가방하나 가지고 여기저기 다녔던 우리라서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니다.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과거의 오늘'이라며 아이의 어릴 적 오늘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아이는 산과 바다에서 환하게도 웃고 있었다. 사진을 보면 애틋해진다.


아이의 얼굴은 그대로인데 몸만 커졌다. 요즘은 연일 팔을 길게 뻗어 천장을 손으로 건들면서 자기의 가 커졌음을 한창 자랑 중이다. 팔만 길면 오랑우탄이 아니냐며 장난을 걸면 작은 눈으로 나를  씩 웃으면서 쳐다본다. 한참을 옛 기억에 잡혀있다가 아이를 놀리고 싶어졌다.

"이렇게 귀여웠는데 지금은 어디 같이 가주지도 않고" 조금은 과장되고 힘이 빠진 불쌍한 목소리로 아이 방을 향해 말했다

"어디?" 하면서 사진보다 훌쩍 큰 아이가 내게로 다가온다. 아이는 사진 속 자기를 보며 "귀엽긴 하네." 하며 또 다른 생각에 잠긴다.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옛날 내가 더 좋지?"

"당연하지. 그땐 엄마 말이면 든 같이 가줬는데 이제는 1초의 고민도 없이 안 가주잖아." 그러자 아이가 엄마도 변했다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자기가 받아쓰기 못 봐서 울면 공부 못해도 된다고 해놓고서는 이제와서는 공부 잘하라고 하고, 예전에는 밥만 잘 먹어도 착하다고 하더니 착하다는 말을 안 하지 꽤 됐다고 했다. 아무리 바빠도 자기 말을 먼저 들어주었는데 이제는 '잠깐만!' 하는 일이 잦고, 안아달라고 해도 왜 하필 지금 안아달라고 하냐며 핀잔을 준다고 했다.  듣고 보니 사실이다.

"아... 나도 옛날 엄마가 그립네." 아이는 내가 했던 것처럼 조금은 과장되고 힘이 빠진 불쌍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에게만 변했다고 했는데 나 역시 아이에게 어느덧 잔소리를 쏟아내거나 서운함을 주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아이는 참 어렵게 내게 온 아이였다. 불임인가 싶을 정도로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일 년 반동안 유기농 음식만 먹고 한의원을 드나드는 정성을 들이고도 안 돼서 시술을 받기 전 기적처럼 찾아온 아이였다. 그런 기다림이 있어서였을까. 아이를 키우는 시간이 몸은 고돼도 마음만은 힘들지 않았다. 그런 아이니 키우는 내내 내가 제일 잘했던 일은 감탄하는 일이었다. 잠만 잘 자도, 밥만 잘 먹어도, 아프지만 않아도 나는 잘했다며 아이를 안아주었었다. 한글과 구구단을 익혔을 때 나는 내가 가르칠 모든 공부를 다 가르쳐준 마냥 아이를 칭찬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일들이 일상이 되고 아이가 커감에 따라서 나는 욕심쟁이 엄마가 되어버렸던 거다. 아이에게만 변했다고 서운함을 200%  표현했었구나 싶어 아차 했다.


나는 내가 제법 괜찮은 엄마이며 늘 한결같이 아에게 사랑을 듬뿍 주고 있다 속되게 말해서 자뻑을 하고 있었다. 런데 아니었다. 비단 아이에게만 이랬을까. 내가 서운함을 느끼고 표현했던 그 누군가도 어쩌면 전과 다르게 까칠해진 내 모습에 실망하고 서운했을지 모를 일이다. 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잘해야지 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내가 틀릴 수도, 잘못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가 늘 지녔으면 하는 따뜻함을 나 먼저 잃지 말고 가지고 있어야겠단 생각이 든다.

오늘은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처음 맞는 방학이다. 방학 때 방학 특강을 알아보던 바쁜 엄마는 잠시 내려놓고 학기 동안 수고했노라고 예전 그 감탄쟁이 옛날 엄마로 돌아가 꼭 안아줘야겠다. 글을 쓰고 보니 "오늘따라 왜 이래?" 투박해진 사춘기 아이의 목소리가 벌써 들려오는 것 같아 설핏 내 얼굴에 잔웃음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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