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보이지 않을 땐, 관점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순호는 대기업 입사만이 성공이라는 생각에 갇혀 있었다.
이직을 준비하기 위해 취업 준비생으로 지내며 자소서 쓰고 면접 보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부모님 기대, 친구들의 합격 소식, SNS에 올라오는 연봉 자랑..잠시라도 쉬면 안될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돈 많이 버는 게 곧 인생의 성공”라는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밤마다 불안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잠시동안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혼자 오사카로 여행을 떠났다. 한국이 아니라면 어디던 상관없었지만, 제일 가깝고 경비가 적게 드는 곳이 일본이었다. 순호는 오사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조차 “이 돈으로 스펙 쌓는 강의 들을 걸” 후회했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순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여행 이틀째, 혼자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생각을 정리하던 도중 오사카 번화가 골목 안 오래된 식당에 들어갔다. 간판은 낡았고, 안은 나무 테이블과 따뜻한 조명으로 아늑했다. 손님은 현지인 위주였고, 카운터에서 50대 중반쯤 된 사장님이 직접 고기를 썰고 있었다. 가업을 이은 전통 식당 같았는데, 메뉴는 스키야키와 신선한 생선 요리였다.
순호가 혼자 앉아 맥주를 마시며 한숨을 쉬자, 사장님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사장님: “실례지만 혹시 한국에서 오셨나요?"
순호: (깜짝 놀라며) “네 어떻게 아셨어요?”
사장님: (웃으며) “제가 한국 사람이니까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재일교포랍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이 오사카를 많이 찾잖아요. 일본 여행은 즐거우신가요?“
순호: “네.. 여행 자체는 즐겁죠..”
사장님: “말끝이 흐려지는 거 보니, 무슨 걱정이 있으신가봐요."
순호: “아 네.. 제가 지금 한국에서 취업 준비 중인데,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한국에선 좋은 회사 들어가서 돈 많이 버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연봉 높고 안정된 직장이 없으면 실패한 인생 같고.. 사장님 가게는 어때요? 이렇게 오래 운영하시니까 돈은 잘 버시겠어요.”
사장님: (고기 썰던 손을 멈추고) “돈이요? 물론 필요하죠. 가게 직원들의 월급 주고 제 가족 부양하려면요. 하지만 저에게 그 이상의 돈은 필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순호: “그럼 뭐가 제일 중요하세요? 사업이면 프랜차이즈를 낸다던가, 매출 올리고 확장하는 게 목표 아닌가요?”
사장님: (살짝 당황하며) “하하.. 확실히 한국에서 오신 분들의 말을 듣다보면 돈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구요. 저는 아버지한테 이 가게를 물려받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여기서 자랐죠. 3~4년 전에 아버지가 저에게 이 가게를 물려주실 때, 정말 행복했어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이었어요. 아버지 발자취를 따라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었거든요.”
순호: “즐겁게요? 식당 운영이 힘들 텐데.. 직원들도 많아 보이고, 고정 지출도 있으실텐데 어깨가 무겁지는 않으신가요?”
사장님: “맞아요. 여기 일하는 사람들 생계는 당연히 제가 지켜야 해요. 그게 제 책임이니까요. 좋은 재료로 맛있는 음식 내드리고, 손님들이 또 오시게 하는 것 역시 중요하죠. 그래야 가게가 오래 가고, 직원들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죠. 그게 부담스럽기보단 제 인생을 더 활기차게 살아갈 원동력같은 역할을 하는 거 같아요."
순호: “한국에선 그런 말 하면 '현실적이지 않다'거나 '철없는 소리'라는 말을 하곤 해요. 사업은 결국 돈이 목적이라면서요.”
사장님: (부드럽게 웃으며) “그건 각자 기준이 다르니까요. 저는 이 가게에서 손님들이 ‘맛있다’ 해주시는 게 돈보다 더 소중해요. 직원들이 밝게 일하고, 가족처럼 지내는 게 행복이고요. 제 아이한테도 천천히 가게 일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물려줄 생각이에요. 공부나 다른 일을 하고 싶다면 그 역시 응원해줄 생각이지만요.”
순호: “사장님은 자식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기업에 들어가는 거를 바라지 않으시나요?”
사장님: “저는 제 아이가 자부심을 가지고 살기를 바래요. 주변 이웃들에게 친절하고 밝게 웃고 지낼 수만 있다면 뭐든 좋답니다.“
순호: (한참 말이 없다가) “사장님 말씀 들으니… 제가 너무 돈만 쫓아왔나 싶어요. 좋은 회사 들어가서 높은 연봉 받는 게 진짜 행복인지, 처음으로 의문이 들네요.”
사장님: “행복은 사람마다 달라요. 당신도 천천히 찾아가면 돼요. 오늘 여기 와서 저와 이런 이야기 나눈 것도, 인생을 새롭게 바라볼 기회가 될 지도 모르잖아요. 물론 제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요.”
사장님과의 대화를 통해 순호는 소중한 점 하나를 깨닳았다. 한 시대를 짧게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살면서 우리가 듣고 경험한 부분은 매우 편파적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한국이라는 작은 사회속에서 모두가 따르는 기준이 보편적으로 옳은 기준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
그런 생각을 하고 난 뒤, 순호의 마음속에 뭔가 모를 벅찬 감동이 밀려들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