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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시플레저 Feb 24. 2023

늦가을 어느 날의 초등학교 동창회

육순의 바람 제2의 정년

난했던 어린 시절의 두메산골 아이들

우리가 국민학교에 입학한 건 1968년,

그다음 해에 아폴로 11호를 타고 암스트롱이 달나라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렇지만 강원도 비탈 깡촌인 우리 동네는 전기도 없었고 모두가 가난하여 학교 끝나면 책보 집어던지고 누구는 소꼴 베러, 누구는 나무하러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곤 했었다.


학교 졸업할 무렵 동네 한가운데로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전기도 들어왔으며 테레비 것도 보게 되었지만 그 당시 테레비는 부잣집 한두 집만 소유하고 있었으며 인기가 많았던 프로레슬링이라도 할라치면 학교 앞 테레비 있는 집에 옹기종기 모여 김일의 박치기 한방에 환호하며 소리 지르던 일들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다.

고향친구가 산에서 칡을 끊어다 직접  만든 콩타작하는 도리깨

우리 초딩들중에는 모두가 알 법한 유명인사도 없고 갑부가 된 친구도 없어 오히려 다행다.


보편적으로 잘된 놈들 보면 친구 위에 군림하려 하고 지 자랑이 지나쳐 순수한 동창모임에 역효과를 가져오고 그로 인해 모임이 깨지기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개척한 부자 친구들


이번 동창회는 지금은 폐교가 되어 펜션으로 탈바꿈한 고향 학교에서 11월 중순에 1박 2일로 한다고 연락이 왔.


동창회 첫날에 눈이 왔는데 기상청에서 첫눈이라고 다.

이곳에도 눈이 오긴 왔는데 공중에서 녹아 진눈깨비로 와서 땅에 쌓이지도 않았다.


이게 무슨 첫눈인가?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는 대중가요가 생각난다. 대중가요 가사는 우리들의 삶을 노래한 것이 참 많다. 가사도 좋지만 만들어진 사연과 배경이 유난히 서사적인 것이 많다.


그러나 저러나 첫눈이 이렇게 내리면 약속장소에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참 난감해지시는 분들이 꽤나 있으실 거다.


그래도 우리 친구들은 다행이다.

첫눈이 온 줄도 모르고 동창회에 가느라 역전을 안 갔으니 말이다.

장을 담그기 위해 메주를 쑤어 띄우는 친구집 거실

다행히 오후 들어서는 춥지도 않고 운동하기에도 좋은 날씨였다.


기온이 급강하 하긴 했으나 이젠 가을이라 하기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아직은 11월 중순이기에 겨울도 아니다.


그렇다고 나이 육순을 앞에 둔 할배,할매들이 들고뛸 날씨는 아다.

그런데 운동장에서 편을 먹고 이어달리기하고 제기 차고 족구하고, 젠장 초딩시절 운동회때 하던 건 다다.

게다가 할배,할매가 껴안고 풍선 터트리기도 한다.

모두가 초딩친구들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운동회가 끝나 상품도 나눠다.

상품은 각자 친구들이 찬조한 물건인데,

빤쓰 가게 하는 친구는 속옷 세트를,

가방을 만들어 유명백화점에 납품은 하는 친구는 브랜드 손가방을,

조그만 화원을 하는 친구는 다육이를 가져와 상품으로 내어 놓았다.


뇌경색으로 큰 수술을 하고 겨우 살아난 또 다른 친구는 로또복권을 여러 장 사와 찬조를 했는데 아직도 말이 어눌하고 단어 기억을 잘 못하지만 저승 문턱까지 구경하고 온 그에게는 기발한 아이디어였.

팬션으로 바뀐 폐교 마당 한구석에 아궁이를 만들어 놓아 가마솥에 밥을 직접 지어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식당을 크게 운영하는 친구는 식당주방 거덜 내며 모든 동창들이 먹을 수 있는 감자탕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


물품 찬조한 친구들에게서는 그들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삶의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캠프 파이어와 함께 외친 초딩친구들 포에버

새로운 꿈을 꾸며 제2의 인생을 사는 동창들


다음날이 되어선 늦가을 찬비가 내렸다.

마지막 남은 나무의 단풍들도 가을 찬비로 우수수 쏟아져 내리며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은 비에 젖은 채 볼품없는 모양으로 변해버렸다.


가을 햇살 속에 울긋불긋 빛을 발하던 어제의 영광은 온데간데없고 금세 퇴물이 되어버렸다.


"마치 우리 세대 같네"

한 친구의 말에 모두가 씁쓸이 웃는다.


"백세 인생, 육십은 푸릇푸릇한 봄이야"

또 다른 친구가 말한다.


짧았던 1박 2일의 동창회를 아침을 먹고 마무리하며 건강하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우리는 이제 초등학교에 다시 입학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예순을 넘으면서 꽃다운 날들의 추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 것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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