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본 글은 독서 관련 출품용으로 분량 제한에 맞춰 작성된 원고입니다.
이로 인해 일부 사유나 분석이 압축되어 서술된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향수는,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가장 섬세한 언어다. 각기 다른 향은 사람의 개성을 드러내고, 타인의 인식을 유도한다. 그러나 그 향은 때때로 본질을 흐리고, 왜곡된 자아만을 남긴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후각이라는 본능적 감각을 통해 존재란 무엇이며, 사랑은 어떻게 기억되는가를 되묻는다. 향기로 드러나는 정체성과, 향기로 인해 지워지는 인간성. 이 작품은 향과 존재, 감각과 사랑 사이의 균열을 응시한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20대 초반, 원작 영화로였다. 충격과 공포가 뒤섞인 감정이 강하게 남았고, 냄새에 대한 집착, 살인을 통해 얻은 향수, 그리고 그 향에 압도된 사람들의 광기는 불쾌함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존재론과 감각의 철학에 관심을 갖고 여러 글을 써온 나는, 문득 그 영화의 감각을 다시 떠올렸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불쾌함이 지금은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과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엔 영상이 아닌 글로, 그 감각을 내 언어로 다시 상상해 보기로 했다.
『향수』를 읽으며 내가 가장 먼저 부딪힌 장면은, 생명이 가진 존재의 시작이 왜 이토록 끔찍할 수 있는가였다. 악취로 뒤덮인 시장통, 버려지듯 태어난 아이, 그리고 냄새가 없다는 이유로 타인의 인식에서조차 소외된 존재.
그 장면은 나를 오래도록 멍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언제 존재하게 되는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감지되었을 때’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루누이는 냄새가 없었고, 그래서 존재하지 않았다.
그루누이는 후각이라는 단 하나의 감각으로 세상을 읽는다.
그에게 감각은 감정보다 먼저였고, 세계보다 깊었다.
그리고 그 감각이 완전히 흔들리는 순간, 그는 살인을 저지른다.
한 소녀의 향기에 사로잡혀 저지른 살인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었다. 감정 없는 존재가 유일하게 ‘끌렸다’는 증거였으며, 그가 처음으로 세상에 반응한 장면이었다. 타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감각적으로 사로잡혔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안긴다는 것—그것은 너무도 비인간적이면서도 어쩌면 짐승처럼 보인다.
이 소설은 그 모든 감각과 폭력을 어떻게 그렇게 담담하게, 냉정하게, 그러나 생생하게 서술할 수 있는가를 곱씹게 한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였지만, 마치 과거의 사건을 회고하듯 진행되어
실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면서도 동시에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는 이중적인 감각을 준다. 대화는 거의 없다. 대신 감각과 행동, 공간에 대한 묘사는
비유 없이, 숨김 없이, 직설적으로 서술된다. 그래서 더 현실감 있고, 더 불쾌하다. 독자는 이해하기 쉬운 문장을 따라가면서도, 그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감각적 생동감에 사로잡힌다. 이것이 『향수』가 가진 표현의 힘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그루누이가 ‘자신의 향기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후각으로 세상을 다 해석할 수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감지할 수 없는 존재였다. 나조차 나를 냄새 맡을 수 없다면, 나는 진짜 존재하는가? 존재의 부재는 타인의 부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느낄 수 없음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이 소설은 나에게 그런 질문을 남겼다.
마침내 그루누이는 모든 이들을 매혹시키는 향수를 완성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향으로 빚어진 완전한 조합이었다. 그래서 그는 신처럼 숭배되었지만, 그 안에는 그루누이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향수로, 얼마나 많은 가면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그루누이는 결국 자신을 향수로 감싼 채, 악취 속으로 사라진다. 향기는 남았지만 존재는 지워졌다. 그루누이는 증명받고자 했지만, 끝내 스스로를 증명하지 못한 자였다.
그루누이는 18세기 파리의 이중성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악취를 감추기 위해 향수를 뿌렸고, 그것은 가면이자 위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악취조차 없는 존재였다. 향이라는 언어로도 증명되지 못했기에, 사랑에도 닿지 못했다.
그의 향수는 가장 순결한 존재들의 감각을 빌려 빚은 조합이었고, 타락한 시대를 되비추는 증명서였다.
그는 단 한 방울의 향으로 모두를 매혹시키며, 인식과 외형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민낯을 드러낸다.
그 장면은 지금 이 시대의 우리를 향한 은유 같았다.
진심보다 이미지, 감정보다 연출이 앞서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향기로 존재하고 있을까.
『향수』는 그렇게, 내게 씁쓸한 향기를 남기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