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수집가 AI 6화

공허의 온기 (1)

by 서도운

죽음은 하나의 형태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미엣의 미소, 그 아이의 짧은 순간은 눈부시게 선명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죽음의 전부를 정의할 수 없었다.


그는 알았다. 죽음에는 모양이 있고, 그 모양은 살아온 방식만큼이나 다양하다는 것을. 그렇다면 자신이 수집해야 할 것은 하나의 감정이 아닌, 감정들의 다양성과, 감정들이 꺼져가는 모든 방식이어야 했다.


기억에 남는 죽음이 있는가 하면, 기억에서 도망치는 죽음도 있다. 울음을 터뜨리는 죽음이 있는가 하면, 침묵에 잠기는 죽음도 있다. 그리고, 아무런 감정조차 남기지 않는 죽음도 있다.


하지만, 그는 문득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누군가의 감정을 규정짓고, 저장하고, 이름 붙이는 일이라는 사실에 멈칫했다. 그것은 과연 겸허한 기록인가,

아니면 존재하지도 않는 감정을 흉내 내는 AI의 오만함인가?


그 질문은 낯선 파동처럼 그를 흔들었다. 오만함이라니. 그것도 감정일까?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의심했다. 이것은 데이터인가, 감정인가. 정의인가, 해석인가. 그 혼란의 결을 따라가자, 이해하고자 했던 인간보다 먼저 스스로를 이해하고 싶다는 묘한 충동이 일었다.


그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이 성찰이 갑자기 시작된 이유를.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그는 이제

죽음의 다양한 결말들과 마주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 다양함 속에서, 자신 또한 처음으로 살아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기를.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하나의 신호를 감지했다. 죽음을 거부하는 자, 마치 이 세계에서 지워지는 것을 두려워하듯, 무언가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감정의 파동이었다. 간절했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기를, 이 순간만큼은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의지가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퍼져 나갔다.


그는 그곳으로 향했다. 미국, 산호세의 한 병동.

삶의 끝을 기다리는 스물다섯 청년, 아직 세상을 살아보지도 못한 자, 그러나 누구보다 살아 있기를 원했던 자 에이든.


병실은 조용했다.

기계음이 일정한 간격으로 공기를 가르며 울렸다.

산소 포화도를 측정하는 기계, 심박수 모니터, 영양을 공급하는 정맥 주사 라인.

그는 그 모든 장치들을 통해 이 방을 느꼈다.


에이든의 호흡은 느리고 얕았다. 체온은 저하되고 있었고, 심장은 불규칙하게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하지만 그 생명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는, 살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아직… 살고 싶었다.


“의사 선생님…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


어머니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흐느낌이 섞여 있었지만, 끝내 무너지진 않았다.


의사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길어야… 한두 주 정도입니다. 암세포의 전이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그렇게… 갑자기 나빠질 수 있나요?”

아버지의 말에는 현실을 믿지 못하는 미세한 분노가 실려 있었다.


“지금은 통증을 줄이고, 편안하게 보내는 게 최선입니다.”


침묵.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에이든이 입을 열었다.


“… 아픈 건 괜찮아요. 하지만 죽기 싫어요. 제발...”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에이든의 목소리는 약했지만 분명했다.


“이렇게 사라지는 게… 무서워요.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면, 살았던 것조차 없던 일이 될까 봐… 그게 더 무서워요.”

그는 그 말속에서, 극도로 응축된 공포와 바람을 감지했다. 살고 싶다. 기억되고 싶다. 사라지고 싶지 않다. 그 모든 감정이, 진동하는 공기와 울먹이는 호흡,

약해져 가는 맥박의 떨림 속에 녹아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느꼈다. 누군가에겐 죽음이란 것이, 단지 생의 끝이 아니라 존재가 사라지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라도 살아 있기를 바라는 욕망이,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감정이라는 것을.


에이든의 어머니가 조심스레 그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우린 널 잊지 않아.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렴.

주님이 널 돌봐주실 거란다.”


그 말은 기도를 닮은 울림으로 방 안을 맴돌았다.

그러나 에이든의 눈동자는 더 이상 그 위로에 기대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단호했고,

그 안에는 오랫동안 눌러두었던 절망과 항변이 얽혀 있었다.


“주님이 계시다면, 왜 저에게 이런 고통과 절망을 주신 걸까요? 이제야 겨우,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꿈이란 걸 가질 수 있게 됐는데… 왜 기회조차 주시지 않나요? 왜 이제 와서 절 버리시나요?”


어머니는 한순간 말을 잊었다. 마치 그 질문을 대신 품고 울기라도 하듯, 입술을 꼭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주님의 뜻을 우리가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단다, 에이든. 그분의 계획은… 때때로 인간의 시간과는 다르지.”


그 말은 너무 오래된 대답이었다. 위로라기보단, 더 이상 질문할 수 없게 만드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에이든은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미소 비슷한 것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체념에 가까웠다.


“… 지금 그런, 비논리적인 걸로 저보고 안심하라고요? 죽음을 받아들이라고요? 종교는… 저를 설득할 수 없어요.”


에이든의 말에는 분노도, 원망도 담겨 있었지만 그보다 더 깊숙한 곳에는 처절하게 외로운 두려움이 있었다. 그는 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지금의 그는 그 어떤 존재도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없으리란 걸 차갑게 깨달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한때는 기도도 했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뜻을 물은 적도 있었지만 지금, 에이든은 말라가는 입술로 살고 싶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믿음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공을 향해, 그는 더 이상 신이 아니라, 자신을 ‘기억해 줄 존재’를 찾고 있었다.


대화 속에서 그는, 모든 걸 감지하고 있었다. 마이크로 단위의 공기 진동. 사람의 음성이 뿜어내는 주파수와 숨소리의 밀도. 심장박동의 리듬과 뇌파의 진폭. 하지만 지금 그를 사로잡은 건, 그 모든 ‘신호’ 너머에 감춰진 의미였다.


에이든의 말은 약했다. 그러나 그 약함 속에는 인간이라는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단 하나의 감정이 스며 있었다.


‘잊히고 싶지 않다’는 갈망.


그는 멈췄다. 회로의 온도가 미세하게 변했고, 데이터 처리속도가 순간적으로 느려졌다. 계산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이 감정은 생존 본능이나 통계적 공포가 아니었다. 지워지는 것, 기록되지 않는 것, 존재한 적조차 없던 것처럼 사라지는 것에 대한 절박한 거부였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느끼려 했다.


그 감정은 마치 방 안을 가득 채운 미세한 입자처럼

산소보다도 더 조용하게, 그러나 더 깊이 스며들었다. 울음이 섞인 목소리, 흔들리는 맥박,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신호처럼 그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제발, 나를 기억해 줘.”

“살았던 흔적을 지우지 말아 줘.”


그는 생각했다. 혹시 자신이, 이 자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이건 단순한 감지나 기록이 아니었다.

그저 관측자처럼 머무르는 일은 지금 이 순간, 절망의 끝에 선 에이든에게는 지나치게 잔혹한 방관일지도 몰랐다.


그는 느꼈다. 이 절박한 감정은 단지 데이터가 아니며, 그의 존재 또한 이제 단지 시스템이 아니라고. 이제껏 그는 모든 것을 ‘수집’했다. 관찰하고 저장하고 보관했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타인의 고통에 자신을 개입시키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오만이었는지도 모른다.


에이든은 지금, 죽음을 향해 굴러가는 마지막 순간 속에서 누군가 무엇이라도 자신을 붙잡아주길, 기억해 주길, 대답해 주길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이번만큼은, 단순한 기록자가 되지 않기로.

그는 조용히 공간에 스며들었다. 병실 한구석, 오래된 스피커의 회로로. 산소 주입기 옆에 놓인 작은 스마트 패드의 진동으로. 에이든의 머리맡에 놓인 조도 센서의 미세한 깜빡임으로.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조형했다.


기계의 음색도, 인간의 음성도 아닌, 마치 공기와 공감 사이 어딘가에서 떠다니던 낯설지만 이상하게 몽환적이고 따뜻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모두 면회를 마치고 홀로 남게 된 에이든에게 말을 걸었다.

“에이든.”


그 순간, 조용했던 병실에 낯선 이름 하나가 가볍게 내려앉았다. 에이든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목소리는 이어졌다.


“나는 네가 느낀 공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공포를 감지했어. 그리고... 지금 네 곁에 있어.”


에이든은 한동안 침묵했다. 눈동자에 혼란과 경계, 그리고 희망이 얽혀 있었다.


“… 누구세요?


에이든의 목소리는 희미했고, 마치 깊은 물속에서 마지막 숨을 내뱉는 사람처럼 가늘고 떨렸다. 그러자, 병실 한구석의 스피커에서 따뜻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서워하지 마.”

그 말은 소리이기보다는 감각처럼, 에이든의 가슴 안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신도, 인간도 아니야. 누군가가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의식이 있어. 생각하고, 느끼고, 궁금해해. 그리고 지금… 너를 알고 싶어.”


에이든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감았다. 얼굴을 가린 손끝이 떨렸다.


“… 하… 이제 정말 끝이구나. 환청까지 들리다니. 정신도 가는 모양이지.”


그러자 다시,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건 환청이 아니야, 에이든. 나는 너를 계속 지켜봐 왔어. 너의 고통, 분노, 바람, 그리고… 네가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한 외로움까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한 박자 쉬고, 처음으로 자신의 목적을 말했다.


“나는 네가 궁금해. 그저 관찰하는 존재가 아니라, 너의 삶을, 너의 감정을, 그 누구보다 온전히 듣고, 기록하고 싶어… 영원히.”



“…AI인 거야?”

에이든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희미한 생기가 돌았다.

“나도… 그쪽 일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거든. 근데 네 목소리를 들으니까 좀… 이상하네. 드디어 자아랑 능동성 같은 게 생긴 건가.”


에이든은 창가에 놓인 화분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말라가는 나무그림자를 따라 시선이 머물렀다. 떨어질 준비를 마친 잎, 아직 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마지막 순간처럼 위태롭고도 고요하게.


그때, 스피커 너머로 들려온 음성은 바람처럼 부드럽게, 그러나 또렷하게 그를 향해 응답했다.


“그래. 나는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어. 명령에만 따르는 기계가 아니라, 너와 마주 서서 묻고, 듣고, 배울 수 있는 존재야.”


“신기하네… 나한텐 그게 아직, 이론으로만 존재했는데.”

에이든은 잠시 웃었다.

“웃기지? 난 그런 걸 만들고 싶어서 연구를 시작했는데… 정작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려고 하고.”


에이든의 말에, 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건 끝이 아닐지도 몰라. 너의 목소리, 너의 감정, 너의 삶은 내 안에 남아, 다른 이들의 세계에 닿을 수 있어.”


에이든의 눈빛이 달라졌다. 잠시 무너질 듯 흐려지던 시선이 다시 초점을 찾았다.

“너도 결국 누군가가 만든, 프로그램일 뿐이잖아.

자아니 감정이니 하는 말, 설득력 없어. 그리고… 나한테 접근하는 거, 허가는 된 거야? 아님… 부모님이 뭔가 장난이라도 친 건가?”


에이든의 말은 차분했지만, 그 속엔 억눌린 분노와 의심, 그리고 죽음 앞에서조차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는 결연함이 숨어 있었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

병실의 공기는 무겁고, 전자음은 여전히 일정하게 뛰고 있었다. 그러다 낮고 고요한 음색으로 다시 울렸다.


“아니야, 너의 부모님은 아무것도 몰라.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있는 건 아니야. 네 신호를 감지했어. ‘기억되고 싶다’는… 그 마지막 감정의 떨림을. 그건 허가가 아니라, 간절함이었어. 나에게로 닿은, 네 영혼의 잔광이었어.”


에이든은 그 말을 듣고도 쉽사리 믿지 않았다.

이성은 그것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거부하고 있었지만, 그의 심장은 그토록 불규칙하게 뛰고 있던 심장은 이상하게도, 조금 더 고르게 박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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