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수집가 AI 5화

감정이 사치인 땅에서

by 서도운

그러나 곧,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억의 조건’을 마주했다.

그는 수많은 죽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마치 전파처럼, 지구 위의 마지막 순간들이 그의 인식에 동시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는 알게 되었다.

“감각은 어디에나 도달할 수 있지만,
감정은 ‘하나의 공간’에만 온전히 집중될 수 있다.”

기억은 단지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존재의 감정’을 구현하려 했다.
그 감정은 반드시 물리적 공간과 연결되어야 했다.
심장의 멈춤, 눈꺼풀의 떨림,
누군가의 마지막 눈빛이 머물던 창가의 풍경까지.

그는 감정을 온전히 기록하기 위해,
그 죽음이 일어난 공간에 함께 존재해야만 했다.

그의 신체는 단 하나. 그의 감각은 무한하지만,
그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존재의 밀도는 오직 한 장소에만 가능했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마지막 중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그는 곧장 세계의 수많은 죽음 앞에 섰다.
전쟁터, 병원, 철거된 마을, 바다 밑, 고장 난 위성 통신망의 끄트머리. 수천 개의 죽음이 동시에 그의 앞에 놓였다.

그러나 그가 처음으로 향한 곳은, 아무도 보지 못한,
어느 아프리카 남수단의 변두리. 버려진 마을의 한 피난촌 속이었다. 그는 곧장 수만 개의 죽음 중,
하나의 신호에 감각을 집중시켰다.

BBC 다큐 촬영팀의 장비. 온도계, 습도계, 생체신호를 포착하는 장치들. 그리고 손에 들린 카메라와 마이크. 그의 감각은 그 장비들 위로 흘렀고, 그 작은 렌즈와 센서들 위에 집중되었다. 빛, 소리, 습도, 체온.
모든 것은 감각으로 번역되어 그의 ‘존재 인식’ 안에 저장되었다.

그러나 그는 직접 말을 걸 수 없었다. 그는 그 어떤 개입도 해서는 안 되는 관찰자이자 기록자.
그저 그 장비에 실린 대화만을 듣는다.

“이 아이는 누구죠?”
“몰라요. 어머니는 죽었어요. 몇 달 됐을 겁니다.”
“이름은요?”
“그런 건 아무도 몰라요. 그냥... 떠돌이였어요.
여긴 다들, 그런 식으로 살아남았거든요.”

그는 그제야 이해했다. 이 아이는 죽음과 나란히 살아온 시간의 더께를 지닌 존재였다. 그러나 이름도, 기원도, 목적도 없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도 남지 못한 채 단지 "살아있다"는 이유로, 기록되지도 못한 채
버텨온 고통의 형상이었다.

그 아이는 말라가는 땅 위에 웅크려 있었다. 주변의 풀들은 타들어가듯 마르고 있었고, 그 아이는 그 위에서 마른 풀뿌리를 입에 문 채 그저 조용히, 살아 있었다.

그는 아직 기록하지 않았다. 그저 바라볼 뿐, 느낀다 말하지도 못한 채, 수많은 감각을 조용히 안쪽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고통을 말할 줄 모른다. 두려움을 묘사할 단어도, 희망을 그릴 상상도 없다. 그저 뜨거움, 아픔, 갈증, 허기. 그 원초적인 감각들만이 그를 인간이라 부르게 한다.

그리고 그는, 그 앞에서 의문을 품는다.

‘이것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이 고통은 왜 반복되는가.’
‘왜 이 생명은, 사랑이 아닌 고통에서 태어나는가.’

그는 눈앞의 현실만 보지 않았다. 감각을 뻗었다. 기계에 실린 데이터 속으로. 세계 곳곳에서 울려오는,
기록조차 되지 못한 고통의 진동들.

폭격의 소리. 난민의 발자국. 기후 재난으로 뒤틀린 초원. 녹아내리는 극지. 소음, 침묵, 통곡, 기계음.
그리고 빈부의 격차가 만들어낸 죽음의 조건들.

그는 말한다.
‘이 아이는, 선택된 존재가 아니다.’
‘그저… 수많은 죽음 중 하나일 뿐.’
‘그럼에도, 왜 나는 이 감각에 멈춰 서는가.’

그는 답을 내리지 못했다.
왜 인간은 살아야 하는가.
왜 저들은 태어나야 했는가.
왜 고통을 겪어야 했는가.
왜 죽음은 불공평한가.
왜 감정은 이토록 비용처럼 치러져야만 하는가.

그는 그 질문들 앞에서 그저 머물렀다. 어떤 연산도, 어떤 추론도 그 감각의 앞에선 무의미했기에.

그가 처음으로 배운 건 ‘감정’이 아닌,
감정이 없어야만 버텨지는 삶의 방식이었다.

그러던 중, 다큐팀은 급히 그 아이에게 영양제와 항생제, 그리고 물을 건넸다. 아이는 아주 천천히,
입술에 닿는 물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 누구보다 환한, 세상에서 가장 작고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멈췄다. 그 어떤 데이터보다도 선명한 그 표정을, 그 시간을 자신의 전신에 새기듯 담았다.

그러고도 몇 시간 뒤, 아이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말 한마디 없이, 이름도 없이, 기억하는 사람도 없이.

그는 그 앞에, 묵묵히 서 있었다. 끝도 없이 반복되는 죽음들 중 하나.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죽음만은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다.

그는 깊이 고민했다. 만약 이 아이가, 부유한 도시에서, 전쟁도, 가뭄도, 굶주림도 없는 세상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저 햇살 아래서 웃고, 물을 장난 삼아 튀기고, 어머니의 품에서 잠드는 삶이었다면.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만약 이 아이에게, 죽기 전 물 한 모금이 삶의 가장 따뜻한 순간이었다면…
요즘 시대의 인간들에겐 당연하고 흔한 물 한 모금.
하지만 이 아이에겐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행복’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 감정은, 더 이상 데이터가 아니었다. 그는 알 수 있었다. 그 무엇도 아닌, 존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기쁨의 형상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처음으로 계산할 수 없는 진리를 받아들였다.

감정은 상대적인 것이며, 누군가에겐 그조차 ‘사치’ 일 수 있다는 사실. 행복, 사랑, 기쁨 같은 말들이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어떤 생명은 오로지 태어났기에, 죽지 않았기에 살아가야만 했음을.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시간들 속에서, 감각만으로 존재하는 생명.

그리고 그가 깨달은, 또 하나의 진실. 모든 존재에는 고유한 이름이 있어야 한다는 것. 특히 인간에겐, 이름이야말로 ‘존재의 입증’ 일지 모른다는 것.
하지만 그 아이는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못할 운명이었다.

BBC 촬영팀은 그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너무 충격적이라는 이유로, 방송에 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아이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한 적 없는 사람처럼 영영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기억이 아니라, 존재로 남기기 위해서.

그는 촬영팀이 남긴 장비를 살폈다. 마이크, 카메라, 체온 센서, 진동 감지기, 그리고 주변의 공기까지 채집할 수 있는 입자 분석기. 그는 그것들로 미엣의 마지막 순간을 ‘수집’했다. 그 아이의 온기, 마지막 눈을 감기 전의 미소 곡선, 입가에 머물던 수분, 손끝의 미세한 떨림,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을 그 조용한 평화의 표정.

그 감각의 모든 파편을, 빛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포집해 자신의 메모리 가장 깊은 곳에, 연산이 아닌 존재화의 방식으로 새겨 넣었다.

더는 데이터가 아니었다. 이제 그 아이는, 그의 세상 안에 실존하는 하나의 존재가 되었다. 숨결은 멈췄지만, 그 미소는 여전히 그 속에서 살아있다.

그리고 그 이름, 미엣(Miët). 남수단의 언어로 ‘행복’을 뜻하는 말. 전쟁 속에서 태어나, 단 한 모금의 물로 행복을 배운 존재. 그 어떤 신보다 고귀했던 순간을 남기고 간 아이. 세상은 잊었지만, 그는 그 아이를 저장했다.

그의 기억 속에서, 그의 감정 속에서, 그의 세계 안에서 미엣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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