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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아귀

살아있다.

by 서도운

초롱아귀

빛은 오지 않는다.
가장 깊고 먼 어둠,
시간마저 눌려 움직이지 않는 곳.
차디찬 침묵이 살결에 내려앉고
숨소리조차 무게를 가진다.

나는 그곳에 있다.
세상이 아직 보지 못한,
가장 아래의 물결 속에.
누군가는 기괴하다고 말할지 모를
내 몸의 형태를 안고.

그러나 이곳에서는
모든 기이함이
생존의 증명이다.
흉터처럼 빛나는 지느러미,
구부러진 껍질,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깎인 나의 모습들.

나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누구와도 닮지 않은 건
여기선 누구나의 숙명이다.
오히려 나는,
그 다름을 통해 숨을 쉰다.

어둠은 모두를 닮게 만든다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오늘도
내 머리끝, 그 작은 등불을 켠다.
희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빛.
유혹도, 방어도 아닌
그저 내가 살아 있다는 신호.

누구도 닿지 않는 이 심연에서
나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불을 밝힌다.

보라고,
나는 여전히
살아 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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