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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의 시간

백의민족(한복)

by 서도운

흰 옷의 시간


햇살 아래

바람 먼저 들어온 옷이 있었다


삶아도 삶아도 물이 들던 삼베

헐렁한 소매에 땀이 묻고

장독 옆에서 마른 뒤

된장 냄새를 품은 옷


여름은

그 옷처럼 조용히 흘렀다


덧댄 조각마다 절약이었고

질끈 묶은 끈 하나에

자존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무명옷이 바람을 막았다


솜을 덧댄 가난한 온기

회색 먼지가 묻은 소매에도

누군가의 어머니는

아침을 지어 입었다


고운 것은 없었다

그러나 부드러운 건 있었다


지저분하다는 말 앞에서도

그들은 다시 삶아 입었고

흰빛을 지키기 위해

삶을 더 삶았다


무게란, 그리 크지 않았다

그 옷들은 가볍게 펄럭였지만


그 안에 든 마음은

계절보다 무거웠다


우리는 늘 그 옷처럼

말없이 견디며 살아왔다


더러워지기 쉬운 옷을 끝까지 고수한 민족,

흰빛 하나에 정신을 걸었던 사람들.

그 단정함이 우리의 품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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