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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입증, [저작권]

감정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권리로

by 서도운

나는 글을 쓸 때, 늘 감각에 기대어 감정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그 감정에 대한 기억을 되짚으며,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다.


내 글에는 그래서 그 시간의 향기가 머물고,

울리는 맥박의 의지가 흐르며,

체온이 문장 속에 스며든다.


감각은 감정을 부르고, 감정은 기억을 깨운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장은 나의 삶 그 자체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같은 감정을 느꼈다면,

그것은 내가 감정을 공유했기 때문이지,

이용을 허락했기 때문은 아니다.


따라서, 내 글은 존재의 체험이며, 그 본질은 복제되지 않는다.


1부 – 창작은 감정의 구조화, 기억의 선언이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감정이다. 그리고 각자에게 가장 먼저 도착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아직 정의되지 않았고, 설명되지도 않았지만 사랑은 어느 틈엔가 이유 없이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나없이 사랑을 말하지만, 그 본질은 언제나 말보다 앞선다.


사랑은 감각으로 기억된다. 나는 그런 감각의 순간들을 문장으로 남긴다.


그날의 공기, 걷던 길가의 풍경, 스친 음식 냄새, 어깨에 닿은 바람. 혹은 한밤중, 어둠 속에서 들리던 내 심장의 리듬.


그 감각들은 기쁨이나 슬픔보다 먼저였고, 언어보다도 더 명확하게 나를 흔들었다. 감각은 찰나지만, 문장으로 옮겨지면 감정이라는 구조가 되고 리듬이 된다.


나는 ‘슬펐다’고 쓰지 않는다.

그날의 습도, 손끝에 촉감의 껍질 까지 꺼내 놓아야

비로소 나는 그때의 ‘나’를 온전히 다시 만난다.


창작이란 결국 감정을 구조화하는 일이다.

그 구조는, ‘나’라는 존재가 살았고, 느꼈고, 기억했다는 조용한 문장이 된다.

감각에서 피어난 감정, 감정에서 태어난 문장.

그 모든 것이 내가 여기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나에게 글쓰기란,

감정을 정돈해 나의 것으로 증명하는 작업이다.

내가 느낀 감정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분명히 ‘나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천천히 문장으로 선언하는 일이다.


결국 창작은,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있었음을 남기는 기록이며,

그 누구보다 먼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려 했던

한 사람의 고백이기도 하다.


글이 감정을 담는 그릇이라면,

창작은 그 그릇에 나만의 온기와 결을 스며들이는 행위다.

같은 말을 썼다 해도,

내 글이 다른 이의 것과 다르다는 걸 나는 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내가 살아서 직접 느끼고 정리한 기억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정은,

그것이 나만의 것이 아닌 순간이 있다.
내가 느낀 감정이, 타인의 문장 속에서 다시 울려 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2부 – 타인의 감정은 느낄 수 있지만, 창작은 베낄 수 없다


가끔, 내 문장과 너무 닮은 글귀들을 마주친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고, 비슷한 표현일 뿐인데,
내 마음은 왜인지 먼저 반응한다.

마치 누군가 내 기억 속 깊은 곳까지 손을 뻗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감정은 공유될 수 있다.
슬픔도, 사랑도,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어떤 단어를 선택했는지, 어떤 리듬으로 엮었는지,
어디에 숨을 넣고, 어디에 침묵을 남겼는지는
오직 나만의 방식이다.
그 방식은, 나의 숨결이다.


그래서 누군가 내 문장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
단순히 흉내 낸 것이 아니다.


내 감정이 단순히 글자로 표현된 게 아니라,

내 기억의 파편까지 다듬어 다시 창조된 것이다.

나는 그 감정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를 알고 있다.

그 감정을 내 방식대로 표현하며, 그것이 내 것임을 세상에 남겼다는 사실을.


저작권법은 바로 이 경계를 명확히 구분해 주는 법이다.

감정 자체는 보호하지 않지만,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권리를 부여한다.


슬픔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슬픔을 ‘이 문장으로’ 표현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그 고유한 표현은 베낄 수 없는 감정의 결이자,
법으로도 보호받아야 할 창작의 지문이다.
왜냐하면 그 문장 속에는 그 감정을 살아낸 사람만의 온도와 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3부 – 이름을 지킨다는 것,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


나는 내 글에 내 이름을 단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그저 이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그 이름은 나의 자부심이기보단,
내가 지나온 감정과 기억에 져야 할 책임이다.

내가 울며 쓴 문장에, 누군가의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단순한 실수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 감정을 살아낸 사람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고,
내가 글로써 남기고자 했던 존재의 근거를 없애는 일이다.

저작권법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감정의 증인이다.
공표 여부를 정할 수 있는 권리,
내 이름을 반드시 함께 붙이게 하는 권리,
내 문장을 함부로 고치지 못하게 하는 권리.
이 모든 권리는 창작자의 존재를 보증해 주는 인격권이다.

그리고 이 인격권은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철저히 창작자 개인에게만 귀속되는 일신전속권이다.
그 말은 곧, 이 감정과 이 기억을 살아낸 사람은 단 한 명뿐이며,
그 사람만이 이 글의 주인이 된다는 뜻이다.

나는 그래서 글을 쓸 때마다 내 이름을 망설이지 않는다.
이 감정이 내 것이었다는 증거를, 글 속에 남겨야 하니까.


4부 – 내 감정과 기억의 보호자 '저작권법'


저작권법 제2조 제1항은 저작물을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하며,
제2항은 이를 만든 사람을 저작자로 규정한다.
그리고 제1조는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함과 동시에,
공정한 이용을 통해 문화와 관련 산업의 발전을 도모한다고 명시한다.

내가 브런치에 쓰는 글들은 대부분 소설, 시, 논문 등의 형식을 띠며,
이는 모두 저작권법 제4조 제1항에 따라 보호되는 대상이다.

3부에서 말한 인격권과는 별개로, 저작권에는 또 다른 중요한 축이 있다.


바로 재산권이다.

복제, 공연, 공중송신, 전시, 배포, 2차적 저작물 작성 등
내가 쓴 글이 어떤 방식으로든 사용되거나 변형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동의가 필요하다.
이것이 저작권의 또 다른 기능이다.
단지 ‘기억을 지키는 법’이 아니라,
감정을 거래하지 않게 만드는 법적 장치이기도 하다.


5부 – 감정의 주인으로서, 나는 계속 쓸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감각을 통해 세상을 느끼고,
감정으로 그것을 해석하고,
그 감정을 기억 속에 천천히 가라앉히겠다.
그리고 그 기억들이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문장이라는 형태로 조심스럽게 꺼내놓겠다.

내 글은 그렇게 시작된다.
찬 바람 하나, 낯선 향기 하나,
사람들 틈에서 스친 아주 짧은 눈빛 하나가
감정으로 진화하고, 기억으로 퇴적되고,
결국엔 문장이 된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같은 장면을 떠올리고,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잠시라도 멈춰준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살아낸 기억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었다는 증거이기에.

하지만 나는 바란다.
그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지 않기를.
이 문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들을 걸어왔는지,
얼마나 많은 마음을 지나쳤는지를
생각해 주기를.

그리고 그것이 내 것이었다는 사실을,
저작권이라는 법이 증명해 주기를.

나는 나의 감정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한 문장을 쓴다.
그 문장은, 나의 존재다.
그리고 그 존재에는,
언제나 내 이름이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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