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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哀 / 衰 / 依

등골 브레이커의 슬픔

by 신동욱

슬프다는 뜻을 가진 한자 '哀'(슬플 애)는 '衣'(옷 의) 사이에 '口'(입 구)가 그려져 있다. 옷을 입고 소리 내어 슬퍼한다는 뜻이니, 여기서 옷은 아마 상복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이 한자를 보면 또 다른 단어가 연상된다. '등골 브레이커'. 10년 전쯤부터 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값비싼 겨울 패딩을 부모가 사주느라 등골이 휜다는 신조어. 혹여라도 이 비싼 옷을 사줄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슬플까. 옷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부모의 마음을 哀만큼 잘 표현한 한자가 있을까 싶다.


등골이 휘어져서라도 옷 한 벌 사줄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그런데 금세 또 유행이 바뀌어 아이가 또 다른 옷을 사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하면... 그런 아이를 부모는 야단치고, 아이는 그것도 하나 못 사주냐고 대들고, 그럼 부모는 더 크게 야단치고... 그렇게 대화가 단절되기 시작한다면 부모는 정말 숨이 턱턱 막히는 심정을 느끼지 않을까. 哀에서 口에 '一'(한 일)을 죽 그으면 '衰'(쇠할 쇠)가 된다.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에 몸과 마음은 점점 쇠약해진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아빠가 무슨 차 타고 다니고, 무슨 아파트에 살고, 이런 얘기를 서로 한단다. 곧 초등학교에 들어갈 아이를 둔 아빠로서 슬슬 걱정이 생긴다. 요즘 아이들 생일잔치는 근사한 장소에서 이벤트 회사를 불러 진행하고, 친구들 선물도 신경 써서 챙겨줘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두려움이 앞선다.


'아빠, 우리 아파트는 왜 이렇게 낡았어?'

'아빠, 내 친구들이 입고 다니는 옷 나도 사주면 안 돼?'

'아빠, 생일 때 내 선물이랑 친구들 선물은 뭐 해줄 거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긴 하지만, 내 아이가 이런 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난 아빠로서 어떻게 말해주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물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법으로 허용되는 선에서 뭐든 아이를 위해 해주고 싶다. 그게 부모 마음이니까. 하지만 나 같은 월급쟁이가 등골 휘어져가며 아이의 모든 욕구를 채워주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을터.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는 좋은 아파트, 비싼 옷, 화려한 생일잔치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아이가 마음에 새기도록 지금부터 잘 가르치는 정도가 아닐까.


"아들아, '依'(의지할 의)라는 한자가 있어. '亻'(사람 인)은 衣에 의지해야 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네 몸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지만 그 이상을 의지하면 안 돼. 옷의 역할은 너의 몸을 지켜주는 것일 뿐, 네 마음까지 지켜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야. 네 마음은 너 스스로 지키는 것이란다. 좋은 옷에 의지해 빛나려고 애쓰는 사람은 스스로 빛나지 못하는 사람이라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아빠 눈에 너는 누구보다 밝게 빛나는 사람이야. 너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잊지 마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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