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대한민국은 경쟁 사회다.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을 안고 생존을 위한 오징어 게임에 참여한다. 학생들은 학생들끼리, 취업준비생은 취업준비생들끼리, 직장인들은 직장인들끼리, 자영업자들은 자영업자들끼리, 제각각 자신이 쟁취하고자 하는 456억 원을 향해 달려간다. 결국 누군가는 승리하고 누군가는 죽어야만 하는, 혈투가 벌어지는 이곳은 '을'들간의 전쟁터다.
경쟁(競爭)의 사전적 의미는 '같은 목적을 두고 서로 이기거나 앞서거나 더 큰 이익을 얻으려고 겨루는 것'이다. 이 단어에 들어가는 '競'(다툴 경)이란 한자의 기원을 살펴보면 경쟁의 의미가 더 적나라하게 다가온다. 갑골문에는 '辛'(매울 신) 두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는데, 辛은 노예의 몸에 표식을 남기는 도구였다. 슬픈 말이지만, 노예 두 명이 서로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 競의 본래 뜻이었다.
싸운다는 뜻의 한자, '鬪'(싸울 투)를 보아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鬥(싸울 투)와 尌(세울 주)가 결합했는데, 尌는 북을 세우는 모습이라 하니 '둥둥~' 울리는 북소리 아래 싸움을 벌이는 군사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런데 鬪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豆'(콩 두)와 '寸'(마디 촌)이란 한자가 보인다. 寸은 손을 의미하니, 먹을 것(콩)을 놓고 서로 멱살 잡고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豆에서 '頭'(머리 두)를 연상시켜 보면 손으로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는 모습도 보인다. 이래저래 생존을 위한 약자들의 처절한 싸움을 떠올리게 하는 한자다.
우리나라는 경쟁사회가 되기 좋은 구조다. 땅덩어리는 좁고 자원은 부족한데 반해, 인구는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것을 얻고자 성공이라는 결승선을 향해 동시에 달려가니, 언제나 탈락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쟁에 뒤쳐진 사람을 도와주는 제도를 만들면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규칙의 공정함'만을 강조하는 세상. 그것이 민주적이고 평등한 것이라 믿는 사람들. 그런데 생각해보라. 게임의 참여와 진행을 참여자들이 직접 결정했던 오징어 게임도 민주적이고 평등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오징어 게임, 그 판 자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원은 무한하지 않은데 그것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많은 이상, 이런 사회적 구조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이 획일화된 성공의 기준을 바꾸는 것. 부유해져야만, 명예를 얻어야만,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어야만 오로지 성공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을 얻고자 열심히 살아간다면 그것만으로 성공한 인생이었다고 치켜세울 수 있는 문화와 사회적 합의, 그것이 먼저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456억 원이라는 같은 목적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도록 부추기는 이 오징어 게임 같은 사회에서는 競과 鬪가 난무할 수밖에 없다. 행복은 스스로 발견하고 만드는 것이지, 꼭 경쟁을 통해서만 얻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 아이들에게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어릴 때 듣던 말을 지금도 하고 있는 걸 보면, 정말 그런 날이 가능할까 싶어 슬픈 마음이 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