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려니' 하지 않기
돌이켜 보면, 어릴 적 나는 무척 여린 성격이어서 상처를 쉽게 받는 편이었다. 어른이 되면서 스스로 '덜 상처 받는 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찾은 방법은 이것이었다.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상처되는 말을 들어도, 상처되는 행동을 당해도, 상처되는 상황에 처해도, 그때마다 나는 '그러려니...' 하며 그 순간을 빨리 지나치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하면 내 마음에 굳은 살은 배길 지언정, 상처는 남지 않는 것 같았다. 난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원래 그런 거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들이 있다. '자연(自然)'이란 단어에 쓰인 한자 '然'(그러할 연)도 그중 하나다. 이 한자는 만들어진 과정이 좀 특이해 보인다. '犬'(개 견), '肉'(고기 육), ' 火'(불 화)가 결합한 모습인데, 그대로 해석하면 개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 것이겠다. 우리나라에도 일부 개식용 관습이 남아있지만, 중국은 지금도 세계 최대의 개고기 소비 국가라 한다. 고대 중국에서 개고기는 구워 먹는 게 너무 당연했기에 이 한자가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비슷한 뜻을 가진 또 다른 한자 '䚷'(그러할 예)는 '言'(말씀 언)과 '兮'(어조사 혜)가 결합했다. 兮는 나무를 도끼로 찍으면서 나는 소리를 표현한 한자라고 하니, '나무를 찍으면 원래 소리가 나는 거다' 정도로 해석이 될 것 같다.
한자의 유래로 본다면 '그러려니...' 한다는 것은, '이건 그냥 개고기 구워 먹는 정도의 일이야. 누구나 그렇게 하니까.' 정도로 치부하고, '이건 그냥 나무를 도끼로 찍는 정도의 일이야. 누구나 그렇게 하니까.' 정도로 치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그렇게 구워지는 개에 대해서 안타까운 심정을 가져본 일이 있는가? 나는 그렇게 찍히는 나무에 대해서 아픈 마음을 가져본 일이 있는가? 그건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스스로 둔감해지는 동안, 다른 누군가의 상처에도 둔감해지지는 않았는가.
나이가 들수록 내 마음에 배겨진 굳은 살은 더 두꺼워져만 가는 것 같다. 그렇게 내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동안 남의 상처에도 점점 둔감해져 가는 듯한 나 자신이 안타깝다. 원래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걸까? 그렇지 않은 좋은 어른들도 많은 것 같은데.
그러려니 해도 될만한 일에는 그러려니 하되, 그러려니 해도 될만한 일이 아닌 것에는 그러려니 하지 않기. 그것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좀 더 진짜 어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