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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욱 Oct 17. 2021

64. 熱 / 冷

열정 그리고 냉정

처음 책을 쓰던 시간을 떠올려보면 어떤 챕터는 글이 술술 써지기도 했지만, 어떤 챕터에서는 진도가 도무지 나가지 않아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그런데 이때 느꼈던 감정이 참 오묘하면서 신기했다. 괴로운 건 맞는데, 또 한편으로는 무척 즐거운 마음. 이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얼마 후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감독이었던 포체티노의 인터뷰를 보고 그 감정의 정체가 '열정(熱情)'이었음을 깨달았다.


"When you work, if you feel the love, it's not a stress it's a passion."

(일할 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열정이다.)


어떤 일을 하면서 괴롭고 즐겁지 않다면, 그것은 스트레스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면서 괴롭지만 즐겁다면, 그것은 바로 열정이다. 스트레스는 몸에서 보내오는 이상 신호이지만, 열정은 괴로운 일을 마침내 해낼 수 있게 만드는 놀라운 원동력이 된다. 열정에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내는 놀라운 힘이 있다.


뜨거운 마음, 열정. '熱'(더울 열)이란 한자가 만들어진 과정이 흥미롭다. 나무를 심어놓은 모양인 '埶'(심을 예) 밑에 '灬'(연화발 화), 즉 불(火)을 지르는 모습이다. 나무를 나의 에너지, 시간, 노력, 재능 등으로 해석한다면, 내 모든 것을 불태우며 나아가려는 마음가짐이다. 이런 마음으로 못해낼 일이 무엇이랴. 우리 인생에서 열정이 중요한 이유다. 다만, 이 열정을 언제까지나 계속 유지하기란 무척 어렵다. 역시 내 모든 것을 계속 불태워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熱과 반대의 뜻을 가진 한자는 '冷'(찰 냉)이다. 직역하면 '冫'(얼음 빙)같은 '令'(하여금 령), 즉 '얼음처럼 차가운 명령'이다. 이 한자를 보면 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며 부하장수 마속을 참형에 처했다는데서 유래한 고사성어, '泣斬馬謖(읍참마속)'이 떠오른다. 제갈량 평생의 꿈이었던 북벌을 준비하고, 또 실행하는 과정에서 그는 엄청난 열정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그것이 마속의 오만한 판단으로 인해 완전히 어그러지고 말았을 때, 잠시 열정을 멈추고 매우 냉정한 모습을 보인다. 그가 냉정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북벌이라는 열정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냉정과 열정 사이, 그 어느 적당한 지점에서 적당하게 잘 사는 것도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지만 좀 더 인생을 멋지게 살고 싶다면 최대한 열정을 품고 살아야 한다. 다만, 그 열정이 내 모든 것을 불사르는 대가인 것도 기억해야 한다. 자칫 절대 버려서는 안 될 내 소중한 것까지 불살라 버리지는 않는지 계속 돌아보아야 한다. 그렇기에 때때로 냉정해져야 한다. 차갑고 냉소적인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열정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한 번씩 숨 고르기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열정적이어야 할 때 열정적이고 냉정해야 할 때 냉정해질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을 좀 더 근사하고 멋지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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