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쓰는 위인전
얼마 전에 아빠가 들려주었던 김만덕이란 분에 대한 얘기 기억나니? 조선시대 기생출신으로 차별받는 땅 제주도에서 태어났지만 여성 CEO로서 성공을 거두고, 제주도에 큰 기근이 닥쳤을 때 그동안 모아 두었던 전 재산을 기꺼이 기부하여 수많은 백성들을 살렸던 의인, 김만덕. 지금도 그녀의 공덕을 기리는 행사가 매년 있을 만큼 후세에 찬란한 이름을 남긴 그 삶을 통해 무엇이 진정한 성공인지 엿볼 기회가 있었지.
오늘은 또 한명의 성공 가도를 달렸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해볼까 해. 양반이 아니었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서자로 불리며 차별 받아야 했던 인물. 그 차별의 벽을 깨고 공을 세우며 출세에 출세를 거듭했지만, 그 인생의 말로는 김만덕과 정반대였던 사람. 바로 유자광에 대한 이야기야.
유자광은 경주부윤이라는 벼슬을 지냈던 유규의 ‘서자’로 태어났어. 아버지는 양반이었는데, 어머니는 그냥 양민이었던거지. 그나마 어머니가 천민인 ‘얼자’보다는 조금 나은 처지였겠지만, 서자라는 족쇄 때문에 과거 시험도 제대로 보기 힘들었을 거야. 그래도 그 당시만 해도 서자들 또한 큰 공을 세우면 양반이 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유자광은 어떻게든 신분 상승의 기회를 갖고 싶었을 것 같아. 그는 그 방편으로 무인으로 길을 선택해. 임금님의 호위와 수도의 경비를 담당하는 갑사에 선발되지만, 어쨌든 정규 무관은 아니었지.
그런데 유자광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와. 전라도 남원에서 복무중이었을 때, 함경도에서 이시애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킨거야. 그는 곧바로 한양에 달려가서 당시 임금님이었던 세조에게 상소를 올려.
“소인은 비록 미관말직에 있지만, 선두에 서서 역적 이시애의 머리를 바치겠나이다!”
유자광의 호기롭고 절절한 충성심에 세조도 큰 감동을 받았나봐. 그를 정규정예군에 편입시키고, 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연락관의 임무를 맡겨. 유자광은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단다. 반란군을 적극적으로 진압하는 한편, 정확한 상황 보고를 해서 큰 신임을 받게 돼. 마침내 이시애의 난이 진압되자 세조는 그를 정5품이나 되는 벼슬인 병조정랑에 임명해. 서자 출신에 대한 파격 승진은 많은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쳤지만, 세조는 오히려 유자광을 위한 과거시험을 실시하고 장원급제시켜줘. 그리고는 정3품 벼슬인 병조참지로 또 한번 크게 승진을 시키지. 불과 8개월 전만해도 비정규직 갑사직을 전전했던 그가 일약 당상관의 높은 벼슬로 파격 출세를 한거야. 물론 임금님 빽 덕에 얻은 과분한 보상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시애의 난에서 유자광이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그것도 가능한 것이었겠지.
하지만 세조가 승하하고 아들인 예종이 즉위하면서 그의 입지도 불안해져.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도 세조의 의지로 파격적인 승진을 거듭했던 것이었으니까 당연한 얘기였겠지? 하지만 서자라는 신분을 극복하고 어떻게 얻어낸 고위직 벼슬인데, 그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겠지. 유자광은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데, 그것은 자신이 모셨던 상사의 뒷통수를 때리는 것이었어. 이시애의 난을 평정할 때 자신의 상관이었던 남이 장군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고발한거야. 어느 날 밤 혜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묵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징조”라는 말을 했는데, 자신이 왕이 되겠다는 속내를 내비쳤다는 거야. 한때 청년 장군으로서 큰 명성을 떨쳤던 남이는 그렇게 허무한 죽임을 당하고, 그를 희생양으로 삼아 유자광은 일등공신이 되어 확고한 지위를 얻게 돼.
그런데 자신을 공신으로 임명해 주었던 예종 또한 재위 1년을 겨우 넘기고 세상을 떠나고 13살의 어린 임금 성종이 즉위를 하게 돼. 그의 두 번째 끈이 떨어진거지. 그래도 유자광은 8년 정도 별탈없이 관직 생활을 하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성종의 결정에 반대했던 일이 있었어. 이 때문에 유배를 떠나는 시련을 겪었다가 나중에 다시 돌아오지만 성종의 재위 기간 동안은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어. 마침내 성종도 승하하고, 연산군이 왕이 되자 그는 다시 기회를 찾기 시작했어. 그러다 수많은 선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무오사화 사건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단다. 연산군은 툭하면 “아니되옵니다”를 연발하는 눈엣가시같은 신하들을 제거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는데 그런 연산군의 의중을 유자광이 재빨리 눈치채고 공작에 나선거지.
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이 있어. 선대 왕이 세상을 떠나면 그 재위 기간의 역사책을 편찬하게 되는데, 후대 왕은 절대 그 내용을 볼 수 없다는 원칙이 있었어. 왕이 내용을 알게 되면 역사를 제대로 쓰기 어렵게 된다는 상식 때문이었지만, 어느 날 연산군이 잔뜩 화가 나서는 당장 보겠으니 가져 오라고 한거야. 사실 그 역사 기록에 연산군의 증조 할아버지인 세조에 대해 매우 비판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유자광이 그 사실을 알고는 연산군에게 몰래 일러바쳤기 때문이야. 세조를 비판하는, 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내용을 직접 확인한 연산군의 분노는 극에 달했어. 당장 이것을 빌미로 관련된 수많은 신하들이 죽거나 유배를 가게 된단다.
유자광의 활약(?)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어. 5년이 지난 후 또 한 번의 대규모 사화가 발생해. 이번에는 연산군의 어머니였던 폐비 윤씨의 죽음과 관련된 신하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던 갑자사화가 일어나는데, 이번에는 훨씬 더 큰 피바람이 몰아쳤단다. 이때에도 유자광은 많은 선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해. 그는 그렇게 해서라도 권력의 중심부에 머무르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어. 연산군의 대표적인 만행으로 역사에 기록된 두 차례의 사화, 그 중심에 유자광이 있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의 권력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단다.
연산군의 폭정과 공포정치가 계속되니, 신하들의 불안도 극에 달했고 결국 반정, 즉 쿠데타가 일어나. 연산군을 강제로 폐위시키고 새로운 임금인 중종을 옹립한거야. 그런데 연산군의 폭정에 일조하던 유자광은 전세가 바뀌니 이번에는 재빨리 연산군을 버리고 중종 편에 붙어. 반정 때 궁궐문 앞에 군사를 거느리고 진을 쳤던 공로로 일등공신에 책봉된거야. 평생 권력의 양지만 쫓으며 살았던 유자광. 이번에도 그의 선택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어.
중종은 임금이 신하에 의해 강제로 쫓겨나고 왕위에 오른 조선 최초의 군주였어. 그랬던 만큼 왕권은 매우 약해졌고 신하들, 특히 공신들의 힘이 매우 강해졌단다. 그러자 신하들 사이에서도 지나치게 강력해진 공신의 힘을 견제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공신들이 지나치게 많은 특혜를 누리고 자기들까지 나눠먹기 하는 일도 많았나 봐. 그래서 공신들에 대해 불리한 여론이 조성되기 시작하니, 그 불만을 대신 떠 안아줄 희생양을 찾게 돼. 그 때 마침 평판이 좋지 못했던 유자광이 탄핵 대상으로 지목된거야. 중종반정의 일등공신이었다가 한순간에 간신으로 매도당한 거지. 다른 공신들은 모든 비난이 유자광에게 쏟아지는 것을 방관하며 자신들에 대한 비난은 피해가는 것을 택했어. 유자광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겠지만, 결국 공신들에 의해 버려지고 만단다. 그렇게 그는 유배를 떠나게 되고 공신 목록에서도 삭제되고 말아. 유배된 뒤에 화병 때문인지 눈이 멀기 시작했다는 유자광은 5년만에 유배지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게 돼.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을 꿈꾸며 산단다. 성공이란 뭘까? 사전에 “목적한 바를 이루는 것”이라고 되어있는 걸 보면, 꼭 돈을 많이 번다거나 유명해지는 것만이 성공은 아닌 것 같아. 누구나 자신만이 원하는 삶의 목표가 있을테고, 마침내 그것을 이루어낸다면 성공했다고 얘기할 수 있을거야. 그 목표를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은 분명 존중받을 일이야. 특히 김만덕처럼 자신에게 주어졌던 차별과 제약, 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성공을 이룬 많은 사람들이 있어.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줘. 하지만 모든 성공 이야기에 꼭 감동이 있는 것은 아냐. 지나치게 성공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는 것마저 개의치 않는 사람들도 무수히 많았어. 그런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는 감동은커녕 분노만 가져다주지. 오늘 아빠가 이야기한 유자광의 삶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어.
유자광은 왜 그렇게 해서라도 성공하겠다는 집착에 빠졌던 걸까. 아빠 생각에는 역시 자신 이 서자 출신이었다는 콤플렉스가 강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 아마 많은 차별을 경험하면서 그런 마음도 더 커져 갔을거야. 그렇기에 그의 강력했던 출세욕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냐. 하지만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성공하겠다는 그 집착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았어. 성공을 향한 그의 욕망 자체는 비난할 수 없겠지만, 그 목표를 이루고자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역사는 그를 간신으로 기록하게 된단다.
군사병법의 고전인 36계에는 진화타겁(趁火打劫)이라는 말이 있어. 남의 집에 불난 틈을 타서 훔친다는 말인데, 남의 불행을 이용해 자신의 잇속을 챙긴다는 거지. 남이를 모함해서 죽이고,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이용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까지 자신의 출세를 도모했던 유자광에게 딱 어울리는 말인 것 같아. 진화타겁을 거듭하며 중종반정에까지 참여하지만 결국 다른 공신들에게 버림받고 쓸쓸히 인생을 마쳤던 유자광. 그는 한때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이제 누구도 그를 성공했다고 말하지도, 그렇게 기억하지도 않아. 다만 역사는 그를 간신으로 기억할 뿐이야.
요즘 코로나 사태로 사회가 큰 혼란과 어려움에 빠져 있어. 그런데 이 국가적인 불행을 자신의 성공 기회로 삼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 마스크를 사재기해서 비싼 값에 파는 사람들이 속출하더니, 아예 마스크 공장을 운영하는 한 사장은 마스크를 아들 회사에 몰아줘서 15배 폭리를 취하게 했다는 뉴스도 들리는구나. 남의 불행을 보면서 진화타겁의 유혹을 버리지 못한거야. 그들은 법적인 책임도 마땅히 져야겠지만, 그게 과연 진짜 성공일까 의문이 들어. 그 마스크 공장 사장은 아들에게 부를 줬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벌게 되는 돈은 정말 잠깐일 뿐이야. 오히려 어떻게든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잘못된 인생관을 아들에게 심어주게 된 것은 아닐까? 그 가치관이 미래의 언젠가 아들을 망치게 되지는 않을까? 오로지 돈만이 성공이라는 어그러진 생각도 안타깝지만, 그런 방식으로 이룬 성공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야 해. 바로 유자광의 사례처럼 말이야.
아들아, 성공한 삶을 살거라. 네가 하고 싶은 일과 목표를 잘 찾아서 한걸음씩 잘 나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이왕이면 먹고 살 만큼의 충분한 돈도 벌 수 있으면 좋겠지. 하지만 그 결과가 좋다고 해서 그 과정까지 항상 합리화되는 것은 아냐. 성공을 꿈꾸되, 바르고 정당한 길로 가거라.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면서 까지,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면서 까지 너의 성공에 집착하지는 말았으면 해. 그렇게 이룬 성공은 결코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없어. 그런 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룬 잠깐의 성공을 대가로 언제 어디서 네 발목을 잡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기억하렴. 아빠는 네가 올바른 길을 걸으면서도 네 목표 또한 멋지게 이뤄내기를, 옆에서 항상 지켜보며 응원할게. 사랑한다, 아들.
# 오늘 아빠의 다짐
- 어떻게 하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자세로 아들을 대하지 말자. 나부터 그런 마음을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