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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욱 Jun 18. 2022

진정한 워라밸이 되려면

조선시대 성종은 술을 좋아하기로 유명했던 임금이다. 그런 그조차도 혀를 내두를 만큼 두주불사인 신하가 있었는데 손순효라는 인물이었다. 그가 술을 너무 좋아해서 걱정이 된 성종은 그에게 이런 명령을 내린다.


"경은 이제부터 술 마실 때 석 잔을 넘지 않도록 하라."


하루는 승문원에서 명나라에 보낼 문서를 올렸는데, 성종의 마음에 영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성종은 당장 손순효를 불러들인다. 그가 당시 뛰어난 문장가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종 앞에 불려 온 그의 상태가 영 아니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꽐라가 되어 있었던 것. 황당해진 성종은 그에게 다그쳐 물었다.


"과인이 경에게 했던 말을 벌써 잊었는가? 대체 얼마나 술을 마셨길래 상태가 그런가?"

"어명대로 딱 세 잔만 마셨을 뿐입니다."

"무슨 잔으로 마셨는가?"

"밥그릇으로 마셨나이다."


알고 보니 그날 출가하여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딸이 집에 들러서 권하는 술을 마셨는데, 어명대로 딱 세 잔만 (큰 밥그릇으로) 마셨다는 것. 왕은 황당했지만 어쨌든 약속은 지킨 것이니, 더 이상 나무라지 않고 말했다.


"중국에 보내는 표문을 그대가 좀 손봐주길 바랐는데, 지금은 경의 상태가 영 아닌 것 같으니 다른 신하를 불러야겠다."

 "그리 번거롭게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신이 지어 올리겠나이다."


그렇게 손순효가 거침없이 다시 글을 지어 올렸는데, 그 글이 훌륭해서 성종이 매우 기뻐했다. 그를 치하하며 또 술을 내리고 잔치를 열어, 손순효는 완전 고주망태가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는 해피엔딩(?) 이야기.


손순효 같은 사람을 보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술을 좋아하고 잘 마셔서 멋지다는 것이 아니다. 오랜만에 딸을 만난 기쁨에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싶은 아버지로서의 입장과 술 석 잔 넘게 마시지 말라는 어명을 차마 어기지 못하는 신하로서의 입장이 부딪치자, 주저 없이 커다란 밥그릇에다 술을 부어 마셨던 그의 재치와 여유, 풍류가 엿보여서다. 동시에 그렇게 술이 취한 상태에서도 거침없이 글을 써서 임금의 마음을 매우 흡족하게 만든 그 실력 때문이다. 그는 세상을 즐기며 살 줄 아는 풍류와 더불어 직장인으로서의 실력도 함께 갖춘 진정한 실력자였다. 오늘날로 따지면 워라밸의 균형을 제대로 맞추며 살았던 멋진 직장인이 아니었을까.


워라밸. Work&Life Balance의 줄임말로 널리 알려진 이 단어를 "일과 삶의 기계적 균형" 정도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하루 8시간 적당히 일하고, 하루 8시간 적당히 내 시간 보내고, 나머지 8시간 잠드는 일상이 반복된다면, 겉모습은 워라밸일지라도 그걸 진정한 워라밸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핵심은 내 일과 내 삶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있다. 만약 나만 행복하다면 12시간을 일하고 4시간만 내 시간을 가져도 워라밸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4시간만 일하고 12시간을 놀아도 워라밸이라 할 수 있다. 워라밸의 전제는 어디까지나 "그래서 내가 행복한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왕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내가 가진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고, 이왕 살아가는 삶을 위해 최대한 즐겁게 살아갈 때 진짜 워라밸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뭐든 내 일과 내 삶에 대해 진심을 다해 접근하자. 풍류를 알면서 실력도 있었던 손순효 같은 프로 직장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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