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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욱 Jun 23. 2022

술은 적당히 마시자.

정인지는 세종 때 대학자로서 명성을 날렸지만 세조의 왕위 찬탈 과정에 동참하고 공신이 된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술 마셨다가 실수한 사건이 세조실록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세조 4년 2월 12일,

세조가 잔치를 베풀었는데 술에 잔뜩 취한 정인지가 왕 앞에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성상께서 주자소에서 《법화경(法華經)》 등 여러 경(經) 수백 벌[件]을 인행(印行)하게 하였고, 또 《대장경(大藏經)》 50벌을 인행하였는데, 또 이제 《석보(釋譜)》를 간행하시니,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옳지 못한가 합니다."


임금이 불경을 간행하는 일에 대해 신하가 사적인 술자리에서 면전에다 대놓고 비방한 것. 세조는 분노하여 잔치를 끝낸다. 그다음 날 왜 자신을 욕보였냐고 정인지를 추궁하자, '그는 술 먹어서 기억이 안 난다'는 핑계만 계속 대다가 세조의 화만 더 돋운다. 그리고 정인지가 물러가서 이렇게 탄식했다는 후일담.


"신숙주는 잘 마시면서도 마시지 않았는데, 나는 신숙주의 잘 마시면서도 마시지 않음만 같지 못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다."


세조 4년 9월 17일,

정인지가 세조 앞에서 술 마시고 또 큰 실수를 하는데, 그 내용은 세조가 한 말에서 나타난다.


"그날 정인지가 나에게 너라고 칭하며 말하기를, ‘그같이 하는 것을 모두 나는 취(取)하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비록 술이 몹시 취하였다 하더라도, 옛사람이 이르기를, ‘술에 취하면 그 본정(本情)을 드러내 보인다.’고 하였으니, 정인지가 한 말은 너무 방자하였다. 그러나, 훈구(勳舊) 이기 때문에 가벼이 죄를 줄 수는 없다."


세조가 하는 일에 대해 반대한다는 말을 면전에 대고 한 것도 큰 무례인데, 더 나아가 잔뜩 술에 취한 정인지가 세조에게 '너'라고 말한 것. 조선왕조실록을 다 뒤져봐도 신하가 왕에게 '너'라고 부른 사례는 전무후무하다고 한다. 우리 역사상 공식적인 야자타임의 시초는 바로 정인지? 물론 왕이 야자타임을 동의한 적은 없었지만...


세조 5년 8월 2일,

정인지가 또 술을 마시고 실수를 했는지 신하들이 세조 앞에 몰려가 벌을 내리라고 청한다.


"어제 정인지(鄭麟趾)가 성상의 앞에 있으면서 말이 무례(無禮)한 데에 관계되었으니, 죄는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해당 관사(官司)에 내려서 사유(事由)를 추국(推鞫)하도록 하소서."


세조의 대답.


"정인지(鄭麟趾)의 무례(無禮)한 짓은 오늘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매양 술에 크게 취하면 이와 같았으니, 어찌 책망할 수가 있겠는가? 또 내전(內殿)에서 사사로이 모였던 일을 말하여 밝힐 수가 없다."


이쯤 되니 세조도 정인지가 술만 마시면 무례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 자포자기한 듯하다. 실수는 한두 번 해야 실수인 것이지, 그게 반복되면 더 이상 실수가 아니다. 그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가 원래 그런 거다.


세조 12년 2월 15일,

정인지가 술을 마셨다는 기록은 없지만, 이번에는 멀쩡하게 임금 자리에 있는 세조에게 왕에서 물러난 태상왕이라고 호칭했다가 또 신하들이 벌주라고 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가 주상(主上)을 일컬어 태상(太上)이라고 하였으니, 진실로 신자(臣子)의 뜻이 아닙니다. 청컨대 죄를 가하소서."


세종 때는 천재적인 대학자로서, 세조 때는 공신으로서 그 시절 떵떵거리던 정인지였지만, 술자리에서 계속된 실수와 언행은 그 스스로를 망신시켰고 평판을 떨어뜨렸다. 만약 그가 공신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수차례 귀양가고도 남았을 일.


이 역사 이야기가 직장인들에게 알려주는 오늘의 교훈. 아무리 술이 좋더라도, 술은 적당히 마시자. 특히 상사 앞에서는 더더욱. 순간의 실수로 패가망신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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