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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욱 Jun 26. 2022

김육과 능력주의

김육은 조선시대 가장 개혁적인 정책중 하나라 평가받는 대동법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이른 나이에 부모님을 잃었다.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소과에 합격해 성균관에 입학했고 그 성균관 수재들 사이에서도 당당히 수석을 차지했다. 능력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노력한 만큼 자신의 재능이 허락하는 내에서 최고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고난의 연속인 삶을 살아야 했다.


김육은 광해군 재위 당시 집권층의 미움을 샀고 더욱이 야당이던 서인 당파 소속이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겠지만, 최악의 과거 시험 부정 스캔들로 기득권층의 아들, 조카, 심지어 이웃집 아들까지 든든한 빽 덕분에 합격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연이은 낙방으로 실의에 빠진 그는 결국 짐을 싸서 낙향한다. 나무를 하고 숯을 구워서 가평에서 한양까지 숯을 지게짐 한가득 짊어지고 걸어가 팔았다. 그렇게 고된 노동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밤에는 글을 읽었다. 지금까지의 삶을 보면 김육의 삶은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김육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그는 충분히 노력했고 재능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다.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정권이 몰락한 것이다. 예전 집권층에게 미움을 받아 낙인 찍혔던 김육의 주홍글씨는 되려 영광스런 훈장으로 바뀌었다. 그는 의금부도사라는 관직을 하사 받았고 정식으로 다시 과거 시험을 봐 장원급제를 한다. 이후 그는 출세의 탄탄대로를 달렸다. 이제 다시 보자. 김육의 노력 덕분에 그가 성공을 했는가? 아니다. 인조반정이라는, 그로서는 행운의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세상은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재능만으로 모든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척 복잡하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온갖 변수들이 넘쳐 난다. 그리고 그러한 외부요인들이 때로 내 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때도 있고, 때로는 내 노력 이상으로 보상을 얻기도 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은 그런 곳이다.


능력주의는, 성공이란 결과는 곧 내 노력과 재능의 대가라고 설명한다. 그 말은 동시에 실패도 내 노력과 재능이 부족한 탓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모든 것은 개인의 책임에 따른 것이므로 그 결과도 본인 탓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것 이야말로 '공정'한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개인의 책임이라고 믿는 능력주의는 성공한 사람들이 누리는 (때로는 과도한) 보상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보고, 실패한 사람들이 겪는 (때로는 과도한) 고통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본다. 그렇기에 능력주의가 팽배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 그 모든 게 오로지 본인 탓이니까.


김육의 얘기를 마저 해보자. 김육은 그렇게 출세의 길에 들어섰지만 그 성공의 과실을 오로지 자신의 여생을 편안히 누리는데 이용하지 않았다. 공납의 폐단으로 큰 고통을 겪던 백성들을 위한 정책인 대동법 시행을 위해 매진했다. 기득권층의 저지를 뚫고 마침내 13년만에 충청도 지역의 대동법 확대 시행을 이뤄낸다. 이러한 결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가난한 백성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따뜻한 마음과 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공이 오로지 자기가 잘난 탓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 못지않게 운도 작용했음을 인정했던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이 노력한만큼 보상이 주어진다는 능력주의는 일견 합리적이고 심지어 도덕적으로 보이지만, 모든 것을 개인, 특히 약자 자신만의 책임으로 돌린다면 그런 능력주의는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성공은 오로지 내가 잘난 탓이 아니며, 실패도 오로지 내가 못난 탓이 아니다. 김육은 그것을 알았기에 그 성공의 과실을 홀로 누리는 삶을 살지 않으려 애썼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루어낸 성과를 오로지 내 실력 덕분이었던 것만으로 해석하지 말자. 내 실력이 99%가 되었든, 50%가 되었든, 반드시 내 실력이 아닌 요인도 있다. 그러니 내 성공에 너무 거들먹 거릴 필요도, 내 실패에 너무 움츠려들 필요도 없다. 성공했다면 그 요인이 주변의 도움도 있었기 때문임을 기억하고 그 고마움에 대해 기억하자. 실패했다면 그 요인이 오로지 내가 부족하고 못나서였기 때문이 아님을 기억하고 다시 한번 용기를 갖고 도전해보자. 그렇게 일희일비하지 않고 앞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때, 직장에서의 성공을 넘어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JOB생각 #직장인이야기 #직장생활 #능력주의 #김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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