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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욱 Nov 11. 2023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곳이지만

아들이랑 읽고 싶어서 쓰는 한국사 (4) - 고조선의 건국

자, 이제 청동기시대에 출현한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드디어 역사시대가 시작됐어. 이제까지 이야기한 건 역사시대가 아니었냐고? 인류가 발명한 문자를 통해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를 역사시대, 그 이전을 선사시대라고 불러. 이 말은 곧 그 역사를 문자로 기록하기 시작한 최초의 국가가 고조선이라는 말이지. 현재 남아있는 역사서 중에 고조선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시대 때 일연이란 분이 쓴 <삼국유사>에 실려 있단다. 그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기원전 2333년에 아사달이란 곳에 고조선을 세웠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단군신화'라고 불러. 굳이 '신화'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글자 그대로 믿기 어려운 부분도 있기 때문이거든. 그럼 단군신화 이야기를 들어볼까?


아주 먼 옛날, 하늘을 다스리는 신인 환인에게는 환웅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세상을 내려다보며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다, 즉 홍익인간의 뜻을 마음에 품었대. 환인은 환웅에게 천부인이라는 보물 3개를 주면서 인간세상에 가는 것을 허락했지. 환웅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 3천 명과 함께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그곳을 '신시'라고 불렀어. 그리고 바람을 다스리는 신하 풍백, 비를 다스리는 신하 우사, 구름을 다스리는 신하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목숨, 병, 형벌, 선악 등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다스렸대.

하루는 곰과 호랑이가 환웅을 찾아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간청했어. 환웅은 쑥과 마늘을 주면서 백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지. 호랑이는 그만 못 견디고 도중에 뛰쳐나가고 말았지만, 곰은 견뎌내고 21일 만에 여자가 되었대. 사람이 된 웅녀는 환웅과 혼인하는데, 그렇게 태어난 아들 단군왕검이 세운 나라가 바로 고조선이라고 하는구나.


하늘신의 아들이 세상에 내려왔다는 둥, 바람과 비와 구름을 다스린다는 둥, 곰이 여자가 되었다는 둥 현실에서 도저히 일어날 법해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 투성이지? 그래서 신화라고 하는 거야. 하지만 이 단군신화를 자세히 잘 살펴보면 그 당시 사회가 어땠을지 추측할 수 있는 단서들이 무척 많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단군왕검을 중심으로 고조선을 세운 세력은 자신들이 하늘신의 아들 환웅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주장했어. 하늘에서 천부인을 가지고 내려왔다는 것은 곧 선진문물을 가지고 다른 지역에서 온 강력한 이주민 세력일 가능성이 있지. 그리고 스스로 하늘의 자손이라는 정통성을 내세워서 주변 부족들을 통합해 나가는 명분으로 삼은 거야. 이들이 이주해 온 곳에는 이미 토착민 세력들이 있었을 거야. 그중에 곰을 숭배하는 곰부족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호랑이부족이 있었는데, 곰이 웅녀가 되어 환웅과 결혼했다는 건 환웅부족과 곰부족이 결합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줘.


환웅이 거느린 신하중에 바람, 비, 구름을 다스리는 신하들이 있었다는 건 무슨 뜻일까? 그건 농사가 무척 중요한 농경사회였다는 걸 의미해.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태풍과 홍수를 몰고 오는 비바람, 구름보다 무서운 게 있었을까? 비가 내리지 않아서 생기는 가뭄도 마찬가지이고. 인간의 360여 가지 일 가운데에서도 중요한 5가지 중 하나가 곡식이었던 것만 봐도 식량 생산이 당시에도 가장 중요했던 거야.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 보이는구나.


단군왕검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단군왕검은 사람 이름을 말하는 게 아냐. 단군은 제사장을 뜻하고, 왕검은 정치적 지배자를 뜻하는 말이거든. 결국 정치 지도자가 종교적 권위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는 건데, 이걸 제정일치라고 불러. 지난번에 여러 부족을 통합한 강력한 지배자를 군장이라고 설명했었는데, 그중에서도 단군왕검은 나라를 세울 만큼 강한 지배력을 가진 군장이었다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는 기록도 전해져. 물론 정말로 1500년 동안이나 살았다는 뜻은 아닐 거야. 조선시대 여러 왕들이 왕위를 물려주며 조선을 통치했던 것처럼 여러 단군왕검이 대대로 지배를 이어나간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아.


아빠는 단군신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 부분이 특히 흥미로웠던 것 같아. 아빠가 느끼기에는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며 마침내 사람이 되었던 곰의 인내심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거든. 반면에 결국 버티지 못하고 동굴을 뛰쳐나간 호랑이가 조금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 하지만 아빠가 어른이 되고 보니, 이 단군신화 속 곰과 호랑이 이야기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더라.


한번 생각해 보자. 곰은 원래 고기도 먹고, 풀도 먹고, 꿀도 좋아하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는 잡식성 동물이야. 반면에 호랑이는 고기만 먹는 육식성 동물이지. 게다가 동굴 안에서 100일 동안 버티는 건 겨울잠 자는 곰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았을까? 하지만 호랑이는 겨울잠을 자지 않으니, 그 배고픔과 답답함을 견디기가 훨씬 더 힘들었겠지. 환웅이 쑥과 마늘을 주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고 했던 시험은, 처음부터 곰에게만 유리했던 거야. 이렇게 불공평한 과제를 줘놓고 호랑이는 끈기가 없어서 실패했다고 일방적으로 말한다면, 호랑이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하게 들리겠지.


우리나라 최초 역사를 기록한 단군신화에 이처럼 불공평한 얘기가 실려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슬픈 생각이 들어.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야말로 우리 현실을 정말 있는 그대로 반영한 게 아닐까 싶어. 실제로 세상은 불공평한 곳이 맞거든. 누군가는 날 때부터 돈이 많은데 누군가는 돈이 없어. 누군가는 건강한데 누군가는 장애가 있어. 누군가는 아빠 엄마랑 행복하게 자랐는데, 누군가는 혼자 외롭게 자랐어. 사람마다 저마다 각각 다른 류의 불공평함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곳이 이 세상이야. 한국사의 시작을 알리는 단군신화 속에 그런 곰과 호랑이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부터 줄곧 불공평한 곳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해.


그런데 말야. 그럼에도 이 단군신화는 정말 중요한 내용을 또 하나 담고 있어. 환웅이 세상에 처음 내려올 때 품었다는 뜻, 바로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겠다는 홍익인간의 정신이야. 비록 원래부터 불공평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서 좀 더 이로운 세상으로 바꾸어나가겠다는 그 다짐이 우리 역사 최초의 통치 이념이었던 거야. 아빠는 우리 역사가 '홍익인간' 정신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단다. 불공평한 세상이라는 것은 현실 그대로 인정하되, 그럼에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로 도우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 단군신화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거든. 우리가 진정한 단군의 자손이라면,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얘기해 보자. 그렇게 동굴을 뛰쳐나간 호랑이를 보고 실패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과연 그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정말 불행한 삶을 살았을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어. 그 호랑이는 사랑하는 다른 호랑이를 만나 더 행복하게 살았을 수도 있는 거야. 동굴을 뛰쳐나간 것 또한 호랑이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 선택을 함부로 예단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어. 호랑이는 호랑이대로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갔다면, 그것만으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삶인 거야.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것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 아마도 그건 곰이 되어야만 성공한 인생이고, 호랑이는 실패했다고 함부로 단정 짓는 사회가 되어버려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래서 모두가 곰이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몰두하고, 그 경쟁에서 탈락하면 실패했다고 규정지어 버리는 정글 같은 무한경쟁사회가 되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곰이 될 수는 없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거나, 재벌이 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야. 그렇다면 모두가 곰이 되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는, 호랑이의 선택과 삶도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세상이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아닐까?


지환아, 곰이 되는 삶이 아무리 멋져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만 성공한 삶인 것처럼 속삭이더라도 오직 그것만이 네 인생의 유일한 정답지는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렴. 네가 곰이 되든 호랑이가 되든 너의 선택에 따른 것이라면, 또 네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면 아빠는 무조건 널 지지하고 응원할 거야. 너의 인생에서 네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말야.


#아들이랑읽고싶어서쓰는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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