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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욱 Nov 19. 2023

균형 있게 세상을 보거라.

아들이랑 읽고 싶어서 쓰는 한국사 (5) - 단군조선과 기자조선

지난 시간에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단군신화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눠봤어. 이렇게 건국된 고조선을 단군이 다스린 조선이라 해서 단군조선이라고 부르기도 해. 나중에 위만이라는 사람이 정변*을 일으켜서, 왕위를 빼앗게 되는데, 이때의 고조선을 위만조선이라 부르게 되거든. 어쨌든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계속 이어졌던 것으로 인식하지만, 어느 계통의 인물이 다스렸냐에 따라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으로 구분하는 것이란다.


그런데 중국 한나라때 지은 역사책에 보면, 단군조선도, 위만조선도 아닌 또 다른 조선에 대한 기록이 등장해. 바로 기자조선이야.


'기자가 조선으로 달아나자 주의 무왕이 기자를 그대로 조선에 봉하였다.' (복승, 『상서대전』)

'주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지만 기자는 신하의 예를 갖추지 않았다.' (사마천, 『사기』)


중국 고대왕국인 은나라 왕족인 기자라는 사람이 조선으로 와서 조선후에 봉해졌다는 거야. 단군조선이 딱히 망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중국 사람이 조선에 와서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는 얘기라니, 좀 뜬금없기는 해. 실제로 고고학적인 측면에서도 기자조선은 실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그 실체를 인정하지는 않아. 그래서 한국사 교과서에는 이 기자조선에 대해 언급조차 안 하고 있어. 사실 기자조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등장하는 중국 한나라는 진나라에 이어 두 번째로 중국을 통일했던 나라야. 이 시기는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다!'라고 주장하는 중화사상이 번지던 때이기 때문에 아무 근거 없이 저 옆나라 조선도 우리네 신하국가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오늘날 기자조선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어. 그런데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단다. 오히려 중국 성리학을 받아들인 조선 유학자들은 기자를 무척 존숭*하여 단군을 모신 사당 옆에 기자를 모신 사당을 따로 지을 정도였거든. 왜냐하면 기자가 인품이 매우 뛰어났고 중국 선진문물을 조선으로 가지고 온 현자였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야. 후한서라는 중국 역사책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기자는 조선 백성에게 예의와 농사짓는 법, 양잠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해. 또 8조금법을 제정하자 백성들이 서로 도둑질하지 않아 밤에도 문을 닫지 않고 부인들은 정절을 지켰으며, 음식을 그릇에 담아 먹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미개한 조선 사람들이 농사도 짓고, 예의도 알고, 법령도 따르게 된 것은 온전히 선진 중국 문화를 가져온 기자 덕분이라는 거야.


지금 들으면 좀 자존심 상할 법한 말이지만, 그래도 그 당시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아주 이해가 안 될 건 아냐. 조선 시대 때는 중국이 곧 선진문물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이 신봉되고 있었고, 실제로 중국이 경제적, 문화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던 시기이기도 했으니까. 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종주국을 미국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조선 시대의 지배이념이던 유교의 종주국은 중국이었으니, 당시 조선 유학자들 관점에서는 중국의 선전문물을 처음 조선에 전해준 것으로 알려진 기자가 고맙게 보였던 거야. 기자가 선진문물을 전파해 준 덕분에 조선도 선진국가가 되었다는 논리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고, 이 말은 곧 조선이 중국과 대등한 문명국이라는 자부심이 깔린 것이기도 해.


하지만 이때 눈여겨볼 것은, 기자를 떠받드는 풍조가 강했던 조선시대에도 단군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부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야. 오히려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 자체가 단군이 세운 고조선에서 유래했다는 사실만 봐도 그들은 단군조선의 후예라는 인식이 강했어. 단군왕검을 모신 사당과 기자를 모신 사당을 나란히 세우고 함께 제사를 지냈지. 그들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단군조선이 상징하는 우리 역사의 '독자성*'과 기자조선이 상징하는 세계적 '보편성*', 이 두 가지를 모두 중시했던 거야.


기자조선이 실재하는 역사였다고 아빠도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기록에서 나름의 역사적 의미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단군조선이 상징하듯 우리 역사가 독자성을 갖고 발전해 옴과 동시에 기자조선이 상징하듯 주변의 다른 문물과도 교류하면서 함께 어우러져 발전해 왔다는 의미로서 말야.


지환아, 앞으로 네가 살아가면서 '독자성'과 '보편성', 이 두 가지 단어를 늘 기억하길 바란다. 너만의 확고한 주관과 생각이 독자성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갖는 일반적인 생각은 보편성이라 할 수 있어. 만약 너 나름의 독자성이 없다면 너는 늘 다른 사람들 말에만 휘둘리게 될 것이고, 반대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보편성이 없다면 오로지 너만 잘났다는 생각에 빠져 독불장군이 되고 말 거야. 둘 다 너의 온전한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들이지. 그러니 독자성과 보편성이라는 이 두 가지 관점은 늘 균형을 갖고 함께 고려해야 한단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책도 많이 읽고 이것저것 많이 알아보면서 너 나름의 생각과 관점을 잘 정리해 보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활발히 생각도 나누고 토론도 하면서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를 함께 갖는 연습을 많이 해보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너만의 주관을 갖되 열린 자세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너는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하게 될 거라 믿어.


* 정변(政變) : 혁명이나 쿠데타 따위의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생긴 정치상의 큰 변동.

* 실증(實證) : 실제로 증명함. 또는 그런 사실.

* 존숭(尊崇) : 높이 받들어 숭배함.

* 독자성(獨自性) : 자기 존재의 절대적인 독립성.

* 보편성(普遍性) : 모든 것에 두루 미치거나 통하는 성질.


#아들이랑읽고싶어서쓰는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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