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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욱 Nov 13. 2023

[원균] 진짜 자신감, 가짜 자신감




백의종군으로 쫓겨난 이순신의 빈 자리를 채운 인물은 원균이었다. 조선 수군 총책임자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그 자리에 올랐을 때 한 친척이 그를 찾아와 얘기를 나눈 기록이 있다.


원균이 이 자리에 오른 것을 영화롭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순신에 대한 치욕을 씻게 된것이 통쾌하다고 말하자 그 친척이 이렇게 말했다.


"적을 무찔러서 이순신보다 큰 공을 세워야 치욕을 씻는 것이지, 그저 이순신의 직함을 대신한 것으로 통쾌하게 여긴다 해서 어찌 치욕을 씻은 것이겠소?"


그러자 원균은 이렇게 답한다.


"적과 싸우게 되면, 멀리서 싸울 땐 편전(짧은 화살)을 쓰고, 가까우면 장전(긴 화살)을 쓰고, 맞부딪치면 칼과 몽둥이를 쓰면 됩니다."


적군을 무찌르고 공을 세울 계책에 대해 그가 내놓은 답은 그저 '화살을 쏘고, 칼과 몽둥이로 열심히 잘 싸우면 된다.'는 하나마나한 말이었다. 더구나 화포를 주무기로 싸우는 조선 수군과 달리, 빠르게 배를 넘어와 백병전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전략을 구사하던 일본 수군을 상대로 칼과 몽둥이로 싸우겠다는 말은 병법의 기본인 '지피지기'도 망각한 것이었다. 어쩌면 칠천량전투에서의 처참한 패배는 이때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원균은 정말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임금의 신뢰를 등에 업고, 라이벌 이순신을 제치고 조선 수군 최고 지휘관 자리에 올랐을 때, 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그것이 근거없는 자신감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그 자리를 감당할만한 충분한 실력과 내공, 마음의 자세 조차 갖지 못한 상태에서 그 자리에 올랐다. 실력없이 얻은 기회는 오히려 치명적인 독이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근거없는 자신감이 그 위기신호를 덮어버렸다. 더 안타까운 점은 그의 실패로 인해 수많은 군사들이 함께 목숨을 잃었고, 국가 전체를 치명적인 위기의 순간으로 내몰았다는 점이다.


더닝 크루거 효과에 따르면, 경험과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자신감도 없다. 하지만 경험과 지식이 조금 쌓이게 되면, 자신감이 급상승해서 정점을 찍었다가, 경험과 지식을 더 얻게 될수록 오히려 자신감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절망의 계곡'을 지난 뒤 그 분야의 권위자가 될 정도로 경험과 지식이 충만해지면 비로소 자신감도 다시 정점에 오른다. 나는 첫번째 정점의 자신감을 '가짜 자신감', 두번째 정점의 자신감을 '진짜 자신감'이라 부른다.


힘든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 자신감을 갖는 건 필요하고 중요하다. 다만 그것이 진짜 자신감인지, 가짜 자신감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가짜 자신감은 나를 망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내 주위 사람들까지 망칠 수도 있다. 그러니 늘 경계하고 경계해야 한다.


혹시 당신이 가짜 자신감이 치솟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자신감이 한없이 추락하는 시기를 겪고 있다 해도,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절망의 계곡을 지나고 있는 당신은 진짜 자신감을 얻기 위해 충분히 필요한 경험과 지식을 지금도 쌓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언젠가 진짜 자신감을 얻게 될 날이 곧 올거라고, 


그렇게 당신을 위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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