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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욱 Sep 14. 2024

2-7. 기억(記憶)하려는 마음

한자, <마음>에 대하여

10년 전쯤 인도 파견 근무를 했던 시절 함께 일했던 현지 직원동료 한 명이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해왔다. 한국에 출장을 가게 되었으니 얼굴 한번 보자면서. 오랜만에 만난 그도, 나도, 함께 일하던 그때보다 조금은 늙어 있었지만, 함께 한 기억만큼은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기억 일부를 함께 공유하는 고마운 사람이다.


예전에 다녔던 회사 팀원으로부터 결혼한다며 연락이 왔다. 나는 이미 그 회사를 떠난 사람이고, 그냥 모바일 청첩장으로 충분할 텐데, 만나서 저녁 한 끼 사고 싶다는 그 말이 참 예뻐 보인다. 기꺼이 약속 시간을 잡는다. 그 역시 기억의 일부를 함께 공유하는 고마운 사람이다.


기억(記憶)은 '記'(기록할 기)와 '憶'(생각할 억)이 더해져 만들어진 단어다. 記를 보면 '言'(말씀 언) 옆에 '己'(자기 기)가 놓였다. 인생을 살아오며 내가 해온 말이 곧 기록이라는 뜻이다. 憶은 '忄'(마음 심)과 '意'(뜻 의)이 결합된 한자다. 내 마음속에 의미 있는 순간으로 남은 것, 그것이 憶이다. 이렇게 보면 기억이란 내 인생을 살아오면서 했던 모든 말과 행동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의미 있는 것들만 추려져 남은 것이 바로 기억이다.


그렇기에 내게 남아있는 그 모든 기억의 총합이 곧 내 인생이다. 살다 보면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갖게 되기 마련이다. 내게 좋은 기억이 더 많다면 난 좋은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고, 내게 안 좋은 기억이 더 많다면 안 좋은 삶을 살아왔다는 반증이겠다. 그렇지만 기억이 있는 모습 그대로만 늘 투영하는 것은 아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었더라도 나름의 의미를 찾고 소중했던 시간으로 받아들였다면, 그 시간은 좋은 기억이 된다. 물질적으로 부족할 것 없는 환경이었음에도 나에게 무의미하고 공허한 시간으로 느껴졌다면 오히려 불편한 기억이다. 그러니 내가 어떤 기억을 어떻게 남기기로 결심했느냐에 따라, 내 인생은 좋은 인생도, 나쁜 인생도 될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기억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 남지 않는다. 내 인생을 살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가진 기억들을 공유한다. 누군가와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면 그 즐거운 기억은 내 것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함께 한 모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때, 진정으로 좋은 기억이 된다. 그 인도 직원과 함께 일했던 기억처럼, 결혼 소식을 알려온 그 팀원과 즐겁게 직장생활을 했던 기억처럼.


좋은 인생에는 좋은 사람이 남고 좋은 기억이 남는다.  말은 곧 좋은 사람을 가까이 둘 때 좋은 기억이 남고, 좋은 인생이 된다는 의미다.


내게 좋은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건, 그러한 기억을 만들어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건, 정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기억을 만들어줬을까? 좋은 기억을 더 많이 만들었을까, 안 좋은 기억을 더 많이 만들었을까? 인생의 절반쯤 살아온 이때, 잠잠히 내 지난 삶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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