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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일할 것인가

이순신의 방식과 원균의 방식

by 신동욱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한산도대첩같은 엄청난 승리를 수차례 거두며 일본군을 막아낸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전투가 끝나면 누가 얼마나 많은 적군을 죽였고 어떤 전리품을 얻었는지 세세하게 기록하여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전투의 과정과 결과에 따른 논공행상과 신상필벌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으니까요.

얼마나 많은 적군을 죽였는지는 공적의 주요 기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적군의 목을 베거나, 귀와 같은 신체 부위를 베어서 그 보고장계와 함께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그러다보니 적군과의 전투에 집중하기보다, 적군의 목을 베는 것에 더 혈안인 병사들도 많았습니다. 다른 누군가의 화살에 맞아 죽거나 물에 빠져 죽은 적군의 목을 베어 마치 게임 아이템 수집하는마냥 챙기는 것에만 몰두하는 병사들이 있었던 겁니다.

특히 원균 휘하의 군사들이 전투보다 적군의 수급 챙기기에만 골몰했던 모양입니다. 이순신의 부하들은 이것 때문에 불만이 쌓입니다. 자신들은 한창 전투에 집중하며 왜적과 싸우고 있는 동안 원균 부하들이 자기 공적만 챙기고 있었으니까요. 그러자 이순신은 "전투에 임하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니, 적군의 목을 베는 것에 너무 집중하지 말라. 너희들의 공적은 세세히 다 기록하여 주상전하께 보고드릴 것이다."라고 말하며 달래죠. 실제로 이순신은 부하들이 전투에서 이룬 공적을 하나도 빠짐없이 세세하게 장계에 기록하여 선조 임금에게 보고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원균은 적군의 머리를 베어 자신의 공적을 증명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물론 그의 방식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적의 수급이라는 증거물 없이 그냥 이렇게 많은 적군을 죽였다고 말로만 보고하면 정말 사실인지 신뢰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까요. 이것은 당시 일반적인 보고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물론 수급을 함께 보내어 공적을 증명하는 것이 가장 좋았겠지만, 당장 전투에 집중하고 승리하는 것이 훨씬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인데 수급을 베느라 그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고 여겼던 겁니다. 한마디로 이순신은 제대로 성과를 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인물이었고, 원균은 성과를 포장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인물이었습니다. 문제는 원균의 부하들이 자신들의 성과를 더 부풀리기 위해 이순신의 부하들이 죽인 적군들의 수급까지 가로채 보고했다는 사실이었죠. 이순신과 원균 사이에 불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 이 때문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회사에도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일이 되게 하는 것' 그 자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전투에 나섰을 때 오로지 전투 승리에만 몰두합니다. 또 한 부류는 일의 과정이야 어떻든 내 결과만 좋으면 되고, 그 결과를 잘 포장하고 보고해서 실력으로 인정받으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전투가 어떻게 되든, 적의 머리를 많이 베는 것에만 몰두하는 이들이죠. 그들은 무임승차를 넘어 자신들의 성과를 더 드러내기 위해 심지어 남이 이루어낸 성과를 가로채거나, 자신이 전부 다 한 것 마냥 과장하는 것도 서슴지 않습니다.

조직 내에 이런 사람들이 섞여 있을 때 중요한 것은 결국 리더의 판단입니다. 바쁜 리더가 모든 과정을 세세히 들여다보기 어렵기 때문에, 몇몇 사람의 말만 듣거나 눈에 보이는 결과만 보고 판단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이 심해지면 묵묵히 일에만 집중하는 사람보다 결과만 그럴듯 하게 포장하는 사람이 점점 더 득세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들만 승승장구하여 남게 된 조직은 어떻게 될까요? 전투가 일어났는데 모두가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하이에나처럼 죽은 적군의 시체만 찾아다니고 있는 장면을 떠올려보시면 쉽게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베어온 적군 수급의 숫자라는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마침내 승리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을 제대로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순신과 원균의 보고를 받은 선조는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그는 수급이 없는 이순신의 장계를 있는 그대로 다 믿어야할지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이순신과 원균 둘다 공적을 인정해주는, 적당한 방법으로 마무리했지요. 사실 선조는 전쟁영웅으로 급부상한 이순신이 몹시 껄끄러웠습니다. 왕조국가에서 항상 최고의 영웅, 최고로 존경받는 대상은 임금 자신이 되어야하는데, 왜적이 쳐들어오자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치는데 급급했던 자신과 대조되는 전쟁영웅 이순신의 존재가 영 껄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그의 존재를 찍어누르려 했습니다. 그래서 원균을 함께 추켜세워 이순신 혼자 돋보이지 않게 하려했던 것이죠. 하지만 이런 조치는 오히려 그가 무능한 리더임을 증명하는 꼴이었습니다. 선조가 지금도 리더로서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리더는 성과 평가를 할때 그 성과에 이른 과정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야근을 많이 했다 같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성급하게 성과를 논해서는 안됩니다. 그 업무에 관여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또 그가 보고한 내용에 대해 실제로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정말 그 일에 제대로 관여했는지 직접 확인도 해보아야 합니다.

특히 요즘은 어느때보다 '공정성'이 팔로워들이 리더에게 바라는 중요한 자질로 평가받는 때입니다. 성과에 대한 평가가 잘못 측정되고, 실제 일하는 것보다 번지르르한 말만 잘하는 사람이 더 인정받는 사례가 많아지면 조직원들은 리더의 공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급속도로 사기가 떨어지고 일할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조직에 매우 좋지 않은 신호가 되죠.

모두가 묵묵히 자신의 일에 책임을 다하고, 결국 성과를 만드는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을 주는 프로세스가 잘 셋팅된 조직이 건강한 조직입니다. 그리고 그런 조직을 만드는 것이 리더가 해야 할 역할입니다.


#이순신 #원균 #선조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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