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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Oct 26. 2015

자기만의 방

나와 내가 대면하는 시간, 공간. 여러분의 마음속엔 있나요?

 밖이든 집이든, 자기 공간에 있을 때. 사방은 어두컴컴한데 스탠드 불빛만 환하고, 들리는 소리라곤 바람 흐르는 소리, 나뭇잎 스치는 소리, 그리고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밖에 없는 조용한 밤.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특히 글쟁이라면 꼭 겪어봤거나 기다렸을 밤. 자정이나 새벽 시간대라서 허락되는 게 아니다. 그냥 여러 가지 조건이 다 맞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내 마음이 이런 밤에 젖어들 준비가 되어있는지의 여부다. 뭘 쓸지도 모르면서  하릴없이 두드리고 있는 걸 보면, 오늘은 밤맞이 준비를 마친 모양이다. 곧 잠들고 내일 아침이 되면 이런 기분은 싹 사라지겠지. 밤이 허락하는 고유한 감성이니.


 나는 이런 시간과 공간을,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제목만을 따서 '자기만의 방'이라고 칭했다. 아무런 요구도 요청도 없고, 신경 쓸 것도 없고, 의무도 없고, 나와 내가 있는 시간. 그냥 있는 시간(대개는 기도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 공간. 아무 말도 없는 컴퓨터를 마주하고 글을 쓰거나, 조용히 기도를 하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손일기를 쓰거나, 미래를 그려본다거나.. 빠르고,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의 온갖 자극에서 자유로워져 내가 느끼고 원하는 감각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마음에 큰 파동을 일으켰던 사건부터 하나하나 짚어간다.

 '자기만의 방'은 쉬어가는 시공간이다. 사실 미래보다 과거를 그려보는 시공간이다. 마음에 큰 파동을 일으켰던 사건부터 최신순으로 하나하나 짚어간다. 무슨 사건이고, 누가 왜 그랬으며,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고, 지금은 어떻게 되었으며.. 주로 대인관계에 대한 고민이나 기억이다.

 사실 나는 대인관계가 서투른 편이라, 스스로 돌아본다 해도 뚜렷한 개선책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다만 한 가지, 흘러가버린 시간을 오롯이 되새기다 보면  마음속 깊은 샘에 서서히 가까워지는 건 확실히 느끼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마음 알아주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조금 자란다(실제로 정말 드물게, 살다 보면 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자기만의 방'에서는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에 대해 좀 더 근원적인 대답이 나온다.

 흔히 일상생활에서는 내가 성취하고 가진 것들로 내 정체성인 양 말하곤 한다. 내 학력, 가정, 수중의 돈, 친구들, 재능, 경험, 역할.. 낮에,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들이다. 하지만 '자기만의 방'에 앉아 나와 내가 대면하고 하나님을  마음속으로 초청하면,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에 대해 학력, 친구들, 역할 등의 응답은 나중에야 나온다. 좀 더 근원적인 대답, 심연에 닿고자 하는 답이 나온다. 그리고 이에 따른 질문으로 더 깊어져 간다. 다른 사람들은 여기 없고, 그래서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여기엔 나와 나, 그리고 주님만 있다.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렇게 스스로를 조금씩 알아가곤 한다.


 살다 보면 힘든 일이 무척 많이 일어난다. 갑작스런 감정의 출렁거림, 관계 문제, 아직 아물지 못한 마음의 상처가 도지거나, 이따금씩 회의감이 감당할 수 없이 덮쳐오기도 한다. 혹은 미치도록 사랑이 갈급해지거나, 슬픈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고, 원하지 않던 상황에 떠밀리기도 한다.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아 괴롭기도 하고, 외로움이 몸서리치도록 마음을 할퀸다. 이 큰 세상에 덩그러니 나 혼자 남겨진 것 같고..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네.. 뛰어내려야 하나?' 마음속 낭떠러지 앞에서 머뭇거리기도 한다. 

 나에게 이런 순간들이 찾아올 때, '자기만의 방'에서 보낸 시간을 되새긴다. 나와 내가 대화한 시간, 하나님께 기도하며 대화한 시간을 되새긴다.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된다."는 사명과 꿈을 되새긴다. 그러면 당장 죽을 것 같다가도, 미친 듯이 두려워 어쩔 줄 몰라하다가도, 중심을 잡아가게 된다. 사명이 있기에. 꿈이 있기에. '방'에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한 경험 때문에.

 방을 나가는 이 길을 지나면, 한층 더 깊어진 나를 마주하리라. 때때로 돌아오기도 하고.. 그렇게, 그렇게.

 푸근한 마음 때문일까. 슬몃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자기만의 방'에서 나와, 다시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 곧 잠이 들면 오늘의 사색도 마음결에 켜켜이 쌓이겠지.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고, 삶이 깊어져 간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자기만의 방'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없다면, 만들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출처:

표지 및 4번: 위키백과, "Secret passage"

2번: Devine art, imweasel2005, "Window light"

3번: Flickr, Dave Dugdale, "Dave Checking out the Perseid Meteor Shower at 10,000 f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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