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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Aug 31. 2015

생일 주간을 떠나보내며

생일에 대한 작은 고찰. 여러분은 어떻게 축하받을 때 가장 행복하신가요?


 이번 주에 생일을 맞이했다. 지난 화요일. 8월 25일. 흔히 날짜를 말할 때, 숫자에 앞서 좋아하는 영화의 제목인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별명을 붙여('8월'의 '25일'이라는 이유로.)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심은하와 한석규처럼 잔잔한 사랑 이야기가 전개되기는커녕, 대개 조용히 지나곤 했다. 기념일 등의 특별한 날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생일을 각별하게 보내보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번번이 잘 되지 않았다(매년 무슨 일인가 열심히 추진했을 텐데, 생일에 대한 추억이 거의 없는 걸 보면 그렇다.).  '생일은 특별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아닌 '생일인데 색다르게, 더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뭐가 색다른지, 어떤 행동이 나를 평소보다 더 행복하게 하는지 잘 몰랐었다. 설령 이를 충족한다 해도 머리에서만 머물고 가슴으로 흘러내리질 않으니. 마음이 촉촉이 젖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 때문에 매년 평범한 생일을 보냈던 게 아닐까?

 청소년기에는 평범한 생일이 가끔 속상하기도 했다. 아직도 판타지가 짙게 남아있었던 까닭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단지 심심했다. 구체적인 판타지는 사라지고 생일 또한 일상의 어느 한 조각임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십대와 작별하고 이십 대 문턱을 넘은 직후 그랬고, 점차 짙어졌다.

 그런데도 '생일'이 갖는 마법은 희한해서, 그날이 되면 달력이나 휴대전화 시계를 평소보다 더 보고, 생각할 때 '무언가 특별한..'이라는 수식어가 자꾸 앞에 붙고, 괜히 새로운 시도에 한 번 더 눈이 갔다. 평소에 작은 하루하루를 특별하게 여기며 아기자기하게 잘 꾸려 나간다고 자부하는데도 그랬다. 정말, 못 말린다.


 해답이 될 실마리를 찾은 건 작년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고, 시기가 맞아 만나게 되었다. 생일선물로 영화 관람을 함께했다. 일반적인 흐름이었다. 시작 전에 같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끝난 뒤엔 각자 집 방향으로 향하면서 감상평을 짤막하게 나누고, 기약 없는 약속과 함께 헤어졌다. 지극히 일반적이다. 그런데도 생생하다. 1년이 지난 지금도, 회상했을 때 그 당시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깨달았다.

 "아하. 나는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구나." 

그러지 않고서야 평범하디 평범한 전개를 세밀하게 기억할 리가 없잖은가. 정류장으로 어떻게 걸어갔는지 그 뒷모습도 다 기억이 나는데.

 

(출처는 서울시 공식 블로그!)

 올해 생일이 다가오면서 내  마음속에 한 가지 소원이 자리 잡았다: '그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회 준비하느라 이리저리 정신이 없어 그냥 잊어버렸다. 그런데 생일에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와 약속을 잡게 됐고, 그 친구를 만나는 동안 또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친구들은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을 해주었다. 그러나 선물도 선물이지만, 내게 가장 큰 기쁨과 만족을 주었던 건 '소중한 친구들과 오늘, 지금, 여기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며칠 뒤엔 생각지도 않던 사람이 편지와 선물을 건넸다. 글도 선물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그 사람과의 대화였다. 우리는 서로 편지에 대해서 말했다. 그의 생일 때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내 사연을 나누었다. 편지를 다시 꺼내어 보면, 문장은 물론 건네받을 당시 짤막하게 나눈 대화까지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더욱 기쁘다.

 어제는 교회 공동체에서 풍성하게, 어떻게 보면 융숭하게 축하해주었다(공동체 개편 전 마지막 모임이 겹친 이유도 있지마는.).  축하받는다는 느낌을  담뿍받으며 가슴을 따스하게 적셔준 건 공동체 사람들과의 속 깊은 이야기였다. 마지막이라서 나는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나 둘 털어놓았고, 다들 거기에 깊이 호응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또한 나누었다. 집에 와서 모임 사진을 다시 봤는데, 내가 보기에도 참 활짝 웃고 있더라. 온 마음을 다해서 기쁜 얼굴로 웃고 있더라. 다시 미소 지으며 화면을 닫았다. 그리고 '특별한 생일'에 대한 소소한 고민을 끝냈다.


 사람으로 충만한, 그래서 사랑으로 충만한 생일 주간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날 사랑해주는구나. 감사합니다.


영화 <...ing>의 한 장면. '맞잡은 손'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슴 짠한 장면이다.

 그래, 나는 다른 어떤 행사나 건전한 일탈(안 하던 짓 하기)등으로는 축하받고 싶은 마음을 채울 수 없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이건 비단 생일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일상'이라 부르는 평범한 날에도 적용된다. 이번 생일 주간을 떠나보내며 얻은 깨달음의 선물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축하받을 때 가장 행복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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