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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Sep 09. 2015

그 마음을 잊지 못합니다.

일상 속에서 마주하기 때문에.. 고마워요.

전편: 생일 주간을 떠나보내며


 창 밖으로 따스한 햇살이 들어온다. 새벽 찬 공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그 자리를 환한 햇빛이 서서히 채워가고 있었다. 상쾌하고 흐뭇한 기분으로 바깥을 둘러보았다. 멀리 아름다운 경치도 아침을 열고 있다. 하나둘씩 멀리서부터 학생들이 다가오고, 지나갔다. 시계를 봤다. 나도 곧 나가야 할 시간이다. 마음에 드는 옷을 꺼내 걸쳤다. 가방 대신 쓰기 시작한 에코백에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넣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물건도 있지만, 지난 생일에 받은 선물도 같이 넣었다. 선물이면서 일상에 필요한 물건이기에.


여름의 끝자락인지, 요즘 햇볕이 꽤 강렬하다.

 나가기 전, 선물로 받은 선크림을 꺼내 고루 발랐다. 가을 햇볕도 조심해야 한다고, 관리는 지금부터 해야 한다고 적은 편지글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편지는 첫 번째 서랍에 고이 모셔져 있다. 마음이 너무 건조해지면 다시 읽곤 하는데, 그럼 감사하는 마음이 들고, 다시 생기가 돈다. 그때문에 나는 매번 선크림을 바르며 지그시 미소 짓곤 한다. 여름 다 끝나가는 가을 초입에, 자외선을 생각하고 사람을 생각하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건, 누군가가 물질에 담아 건넨 작은 마음 덕분이다. 그의 말마따나 요즘 아침 햇볕은 좀 따갑기도 하다. 하지만 선크림 덕에 피부 걱정 없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참 든든하다.



 교재와 필기구, 사전 등을 챙기고 빼먹은 게 없나 둘러보았다. 이내 책장을 열어 시집을 넣었다. 문청생활을 그만 두기로 작정하면서 결별했던, 시집. 그러나 다시 '글 짓는 사람'이라는 꿈이 생긴 후, 시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품집도 몇 개 점찍어 두었다. 하지만 선뜻 살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왠지 금방 외면해버릴 것 같아서.

 그런데 얼마 전에 친구가 대뜸 전화로 "수필집이 좋냐, 추리물이 좋냐?"라고 물었다. 으레 그렇듯 좋은 책을 선별해달라는 질문이라 여겨 누가 대상이냐고 물었더니, 답은 간단했다. "너야 너. 생일선물 해줘야지." 생일 한참 지났다는 내 겸양도 아랑곳 않고 뭐 필요한 거 있느냐고 재차 물었다. 그래서 답해주었다. 김경주 시인의 복간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제목이 묘하게 끌렸고, 시 한 편 한 편이 힘차게 소리치는 듯 우람한 시풍(詩風)이 끌렸던 시집.

 시집을 간간이 읽는다. 수업시간이 조금 뜨면, 약속상대를 기다리면서, 버스가 오나 살펴보면서, 이런저런 모양으로 기다리는 시간이 생길 때마다 꺼내 읽곤 한다. 시인이 행과 행, 연과 연 사이의 공간에서 독자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작가가 독자를 기다리지 않고, 독자가 작품을, 작가를 기다리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 만날 수도, 헤어질 수도 없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같은 느낌으로 시를 읽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채워나간다. 꿈을 잊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던  마음속 어린아이의 심정에 공감하고 싶기도 하고..


내게 딱 알맞은 이어폰을 선물해준 그 관찰력에 박수. (영화 <라붐>의 명장면!)

 무슨 음악을 들으며 걸을까 정한 뒤 이어폰을 꽂았다. "너 음악 많이 듣잖아. 그래서 필요하겠더라. 써봐. 괜찮나?" 나도 몰랐던 습관을, 친구들은 알고 있었다. 취향도 어떻게 알았는지 딱 알맞은 형태로 사왔다. 귀에 쏙 들어가고, 외부 소음이 차단되고, 줄이 잘 엉기지 않는. 세심한 관찰과 배려가 새삼 고마웠다.

 기기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온다. 볼륨을 알맞게 조절한다. 선율이 이어폰을 따라 흐른다. 귓가에서 고이고, 이내 소리가 되어 온 몸에 울려 퍼진다. 선물에 담긴 마음과 함께.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오며 후식 생각이 났다. 하지만 곧 다음 수업이 있어 미루기로 했다. 날이 슬슬 추워지는데도 가끔 아이스크림이 생각날 때가 있다. 슈퍼에서 파는 보통 아이스크림 말고, 베스킨라빈스에서 파는 독특한 게 먹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가격이 가격인지라 선뜻 사먹지는 않았다. 차라리 조금 싸게 먹고 말지. 그랬지만, 요즘은 마음이 든든하다. 하나는 4인용으로, 하나는 패밀리로 두 개의 기프티콘을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식후에 색다른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여유를 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수업이 다 끝나고 내 방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가방을 끌러 교재를 제자리에 놓고, 침대로 몸을 던지려 했다. 그런데 시선을 잡아 끄는 자그마한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올해 생일 첫 번째로 받은, 생각할 때마다 많이 미안하고 고마운 친구에게서 받은, 작은 카드. 그리고 열쇠고리와 손바닥만한 인형.

문장 하나. 하지만 그거로 충분하다. 더할 나위 없다.

 "(    )"

 카드에는 마치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은 한 문장이 쓰여 있다. 그 문장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고맙다.


기념일은 어떻게 보면 일상의 한 조각이다. 선물은 그저 물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념일이 기념일이 되고, 선물이 선물이 될 수 있는 건 거기에 담긴 '마음' 때문이다. 일상을 떼어 따로 기념하고, 물건에 사연과 마음을 담아 건네는, 선물. 꼭 물질이 아니어도 누군가와 공유한 추억, 힘이 되는 한 마디, 따뜻한 미소 같은 보이지 않는 것도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담긴 거니까. 그렇기에 기념일과 선물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거다.



일상을 보내는 지금도, 그때 그 마음을 잊지 못합니다. 곳곳에서 소중한 마음을 마주하기 때문에.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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