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류아 Dec 22. 2015

죽음에 관한 단상

마지막 호흡이 다할 때, 후회 없길

 “나는 생애 마지막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할까?”     


 꽤 자주, 죽음에 대해 묵상하곤 한다. 신앙과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삶에 대한 집착과 미련 또한 비중 있는 이유다. 나는 삶에 대한 욕심이 많다. 하고 싶은 거, 보고, 듣고, 먹고, 느끼고 싶은 것들이 많다. 생각이 많고 계획도 많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걸 좋아하지만, 대개 바쁘게 열심히 산다. 일정이 제법 빡빡하다. 주변사람들은 말한다. ‘너 너무 바쁘게 사는 거 아니냐’고. 나는 그저 웃는다. 대답해주고 싶지만 너무 심오하다고 듣지 않을까 싶어 속으로만 답한다. “그게 말야..”  

   


 신기하다. 나는 아직 젊은데도 친구를 보내는 장례식에 꽤 많이 갔었다.


 연락을 받으면 기분이 정말 묘하다. 심지어 식장에 갈 때도, 그냥 다른 일로 가는 것 같다. 어제, 혹은 지난달에, 작년에, 몇 년 전에, 웃으면서 헤어진 친구들의 영정사진을 마주하노라면 그때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솔직히 그렇다. 그냥 이게 다 꿈 같아 현실감이 없다.

 조의금을 내고, 방명록을 적고, 헌화하고, 상주와 인사하고 나서 밥을 먹는데도 아리송하다. 심지어 운구까지 해서 보냈던 친구도 실감이 안 났지. "잘 왔다"면서, "뭐하고 지냈냐"면서 친구가 어디선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매번 식장에 갈 때마다 그랬다. 기억이 새파랗게 살아있었으니까..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던 친구, 마냥 착해서 언제나 믿음이 가던 친구 등등.. 다들 언젠가, 다양한 방법으로 만났던 친구들, 친구들. 기억속에선 손을 흔들어주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갑자기 세상을 뜬 그들.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날지 그 누가 알았겠는가.


그 누가 알았을까. 이렇게 떠날지(헨리 피치 로빈슨, "임종", 1858)

 적어도 식장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별 애착이 없던 사람이었어도, 지금 내게 다른 생각이 많아도 그렇다. 세상에서 한 사람이, 하나의 세계가 사라졌다는 무게와 직면하게 된다. 동시에 ‘그가 이젠 없다’는 사실이 현실적으로 스며든다.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때 말이다.

 이때는 내 삶과, 생명(生命)에 대해 뚜렷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된다. 공기가 느껴지고, 심장의 고동이 새삼 느껴진다. 팔다리가 움직이는 게 사뭇 신기하게 여겨진다. 아주 잠시나마 세계가 달라 보인다. 이리저리 각자 어디론가 향하는 이들, 무엇인가 하고 있는 다른 이들을 멀끄러미 쳐다보게 된다. 



왜 열심히 사느냐고?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죽을 때까지 내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으니까.

 우리는 영원할 것 같이 산다. 과학, 의학, 첨단기술의 발전, 전례 없는 풍요, 미래에 대한 장밋빛 환상.. 죽음이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무소불위(無所不爲)한 존재처럼 산다. 세상의 통치자로, 마치 끝이 없는 듯이 산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리고 언제 세상을 뜨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걸 아니까 다들 악착같이, 발악하면서 살아간다. 돈, 명예, 권력, 인간관계, 성공.. 물론 일생을 사는 동안 어느 정도 필요한 요소들이다. 삶의 일부이다. 나도 어느 정도 이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묵상할 때, 늘 대부분이 연기처럼 스러진다. 죽음 앞에서 그 모든 게 다 남을까? 세상과의 작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혹은 급작스레 들이닥치는 죽음의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까? 겪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묵상하며 상상하다보면, 가슴속에 묵직하게 응어리진 한 마디만이 남는다.

2007년 퓰리처상 수상작 "어머니의 여정", Renee Byer. 아들 데릭은 "사랑한다, 사랑한다 내 아기, 내 아들,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으며 어머니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좀 더 사랑할걸."

 가족을, 친구를, 이웃을, 나를, 자연을, 신을.. 좀 더 사랑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 후회할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못해서 너무 애통할 것 같다.



잠시 머물렀다 가는 인생. 사명을 다한 삶, 사랑을 다한 삶이고 싶다.

마지막 호흡이 끝나는 그 순간에, 회한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싶다.

현재를 충실히 살고 싶다. 지금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다.


그렇게 열심히 살다가, 본향에서 기다릴 그분과, 먼저 간 사랑하는 이들의 품에 살며시 안기고 싶다.



이미지 출처:

표지 및 마지막 이미지: by Unsplash

1번: by PublicDomainPictures

https://pixabay.com/(이상 작가명)

2번: Henry Peach Robinson, "임종"(1858. 조합사진)

3번: Renee Byer, "어머니의 여정"(2007 퓰리처상 Feature Photography 부문 수상)

매거진의 이전글 거위의 꿈, 우리의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