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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Jan 03. 2016

결코 헛되지 않음을

어느 날의 마주침, 그리고 그에게 간직된 내 글 한 편

“어,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골똘히 생각에 잠겨 길을 걷던 나는, 짐짓 놀랐다. 많이 익숙한 목소리였다.

 시선을 그러모았다. 친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동시에, 조금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다. 워낙 오랜만에 만난데다, 평소 조용히 지내는 그였기에.

 우린 한 공동체에 몸담았던 사이였다. 나는 아직 활동 중이고, 그는 자기 길을 찾아 새로운 곳으로 떠났다. 건강하게 잘 떠났고, 속한 곳은 달라도 추구하는 목표는 같았다. 그래서 모두가 축복하는 마음으로 그를 보냈다. 나도 그도 둘 다 조용한 성격에 서로 대화를 나눈 적이 드물어, 기억 속에 간직한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우리는 잠시잠깐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다가 아, 라는 탄성과 함께 그가 입을 열었다.

 “글 잘 보고 있어요. 근데 글이 참 좋아요. 정말로.”

 읽은 적 있냐고, 내가 놀라 되물었다. 그랬더니 재차, 읽고 있다면서 살며시 미소 지었다. 다시 놀랐다. SNS 친구 사이는 맞았지만, 그는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자기 계정은 물론 다른 사람의 계정에도. 그래서 전혀 생각지 않았는데.. 지인 중에 보이지 않는 독자가 또 있다고 하니, 쑥스러웠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에게, 그는 지그시 물었다.

 “예전에 써주신 글 기억하세요? 그때 꽤 길게 적어주셨는데.”

 그는 활짝, 생기어린 미소를 지었다. 글을 회상하는 듯했다. 기억나고말고. 그가 말하는 ‘긴 글’은, 몇 년 전 그의 생일 무렵에 적은 것을 말했다. 신입으로 들어와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 대견해서, 격려하고 칭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글을 썼다. 언제나 그렇듯, ‘전심(全心)을 다한 진심(眞心)’으로 썼다.

    


글에 마음을 담아내는 작업은 복잡 미묘하다.

 타인에게 보내는 마음 담긴 글쓰기는 쉽게 하지 않는다. 남녀노소를 가리진 않고, 다만 특별히 마음 가는 사람에게만 하는, 감정적으로 복잡 미묘한 작업이다. 엄청 기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힘겨운 작업이다. 대개 손으로 쓰기에 더더욱 그렇다. 쓰면서는 감사함, 기쁨, 존경, 존중 등의 두근거리는 감정을 담뿍 느낀다. 그러한 감정을 머금고 완성된 정성어린 글은 행복 그 자체다. 일단 스스로가 정말 기쁘다. 글쟁이로 살아온 보람을 느낄만큼.


 그러나 당사자에게 전달되고 난 뒤에는, 한동안 큰 허전함에 시달린다. 감정조절에 실패하면 약간 우울함까지도 찾아온다. 왜냐하면, 가슴 깊은 곳에 고인 순수한 마음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조금만 왜곡해도 오염되거나 상처 받기 쉬운, 가장 순수한 마음.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날의 마음.

 그날, 마음속에서 기쁨에 젖어 해맑게 웃으며 뛰놀던 어린아이의 마음..


왜곡. 오해. 그게 아닌데..

 순수함 그대로 받아들여주길 바라는 내 마음과는 달리, 일부는 의심하고, 왜곡하고, 심지어 밀쳐버렸다. 비난 아닌 비난을 받은 적도 있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한 무표현도 가끔 마음을 힘들게 했다. 지금이야 좀 더 성숙하면서 덤덤해지고 있지만.

 이러다보니, 오죽하면 절친한 친구가 “너 그런 글은 그만 써. 진짜 널 위해 하는 이야기야.”라고 말했을까. 하지만 계속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꾸 마음이 흘러넘치니까. 어떤 때는 나도 멈추고 싶었지만, 결국 또 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나도 어찌할 바 없는 몸짓이었다. 타인에게 닿고 싶은, 그리고 그들의 마음 어딘가에 기억되고 싶어 하는, 간절한 몸짓이었다.



 며칠 뒤, 불현듯 그의 말이 떠올랐다.

 “글 잘 보고 있어요. 근데 글이 참 좋아요 정말로.. 예전에 써주신 글 기억하세요?”

 살며시 마음 어딘가의 응어리가 녹았다. 누군가 내 글을 기억하고 간직해주었으면 하는 소원이 모여 맺힌 응어리가.. 지난 시간 앞에서 회상에 잠기며 미소지었다.

단순히 한 번 읽히고 끝나는 글이 아니기를.

 글을 쓰는 매순간마다 염원했다. 단순히 한 번 읽히고 끝나는 글이 아니기를. 일회용품처럼, 인스턴트 메시지처럼 한 번 보고 지나갈 글이 아니길 바랐다. 왜냐하면 마음을 담았으니까. 가장 순수하고 소중한 부분을, 정성스레 길어다 썼(作)으니까. 감사, 존경, 신뢰, 존중, 기쁨, 격려.. 그 가치가 온전히 보존된 듯해 큰 희열을 느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글조각의 기억을 간직한 그에게도 감사했다. 이내 메시지를 보냈다. 네 말이 큰 힘이 됐다고, 고맙다고.

 몇 시간 뒤, 그의 답장이 왔다.

 "다행이에요. 그런데 정말 멀리서라도 응원해요 ^^"

 글 한 편 한 편에 담아내는 깊은 마음이 결단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걸 일깨워준, 어느 날의 마주침.

 그리고 그에게 간직된 나의 글, 나의 마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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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표지 및 마지막 - http://www.torange.us/

https://pixabay.com(이하 작가명)

1번 - Andrys

2번 - NattyStt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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