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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Jan 14. 2016

이야기 하나쯤 간직되길

별을 바라보며 읊는, 글쟁이의 소원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혹시라도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싶어서 더 높은 데로 올라갔다. 하지만 별은 여전히 그 거리를 좁히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한참이나 멍하니 쳐다봤다. 오랜만에 예전 습관대로, "생각을 쏘아올렸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이내 별에 알알히 박혀 더욱 더 반짝거렸다."(*문청시절 즐겨 쓰던 표현들.) 


오랜만에 느끼는 즐거움이었다.

쏟아질 듯한 별무리를 마주하고 있자니, 고등학생 때 쓰다 만 단편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대학생. 항공과학을 연구하는 이공계생으로, 사람들과 접촉하거나 깊은 관계 맺기를 꺼려한다. 하지만 교육봉사활동 시간을 채워야 해서 어쩔 수 없이 결손가정 어린아이를 돌보게 된다(아이의 아버지는 사고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구하고 의롭게 죽었다는 설정). 주인공이 아이를 돌봐주며 생기는 내면의 변화와 성숙을 다루려 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미완으로 남았는데,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형아. 저기. 저기 보여? 우리 아빠. 저기."

"응? 아빠?"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이 아버지의 부재는 온동네가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해맑게 말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쳐다봤다. 아이의 손가락은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에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서렸다. 나는 모른 체했다.

"우와. 예쁘다! 아빠가 저기 계셔?"

"응. 엄마가 그러는데 우리 아빠는 별이 되었대요. 너무 착한 사람이어서 하늘이 데려갔대요. 그치 엄마?"

"..응."

 아이 어머니는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물기 어린 목소리로 간신히 답했다. 나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동화라며 비웃었을 텐데. 조심스레 아이 아버지에 대해 물었을 때,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착한 사람. 자신에게도, 아들에게도 너무나 착했던 사람. 착해서 사람들을 사랑했고, 너무 착하기 때문에 세상과 작별한 사람.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형아. 나 우주비행사 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사실 아빠 보고 싶어서 그래요. 깜깜해지면 이렇게 만날 수 있지만.. 엄마처럼, 형처럼 옆에서 맨날 보고 싶어."

 그제야 이해됐다. 우주비행에 대해 공부한다고 했을 때 필사적으로 내게 매달렸던 첫 만남이. 그리고 아이 어머니의 말도 떠올랐다. 아이가 아버지를 똑 닮았다고. 정이 많은 것도, 순진무구하게 착한 것도. 마음을 닫아 건 나를 언제나 환영해주었던 마음의 원천도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유산. 자식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아버지의 소중한 유산이었다.

 "형아. 나 도와줘. 아빠 보고 싶어……."

 나는 아이의 눈 속에서 그분의 모습을 보았다. 비록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분이지만, 내게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도와달라고. 아들을 도와달라고. 간절한 외침이 느껴졌다. 덩그러니 남겨진 아이에게, 세상은 너무나 크니까. 나는 무릎을 꿇었다. 그를 안아주며 약속했다. 도와주겠다고.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노라고.     


 부둥켜안은 세 사람 위로, 긴 별똥별이 밤하늘을 가로질러 흘러내렸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 어린아이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내용이다. 혹은 민속설화라든가. 하지만 “사람은 죽는다. 죽어서 사라진다.”는 건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이다. 죽음을 피한 사람은 없다. 그러니 나도 언젠간 사라지겠지. 별이 되진 않겠지만, 어쨌든 사라진다.

 먼훗날엔 내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리라. 당연한 이치이고, 죽음 이후 영원한 세계가 있기 때문에 사라지고 잊히는 게 쓸쓸하거나 외롭지는 않다. 돌아갈 곳이 있고, 날 기다리는 존재들이 있으니.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서 닿기를.

 다만 살아있는 동안은 이 넓은 세상 어딘가에, 그리고 누군가의 가슴속에, 내 이야기가 하나쯤은 간직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당신이 기억해주기를. 나로 당신에게 닿기를그렇게 우리 모두 점차 서로 이해하기를.


 오늘도 글을 쓰며 소원할 뿐이다.



이미지 출처

표지: Photo by 김하늘

마지막: http://en.wikipedia.org/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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