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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Jan 20. 2016

흘러가다

SNS, 그리고 열 네살 그 시절의 이메일 교류

 무심결에 SNS를 켠다. 화면 가득 온갖 정보가 쏟아진다. 가장 크게 눈에 띄는 건 사람들이 올린 이런저런 사진들이다. 행복한 얼굴을 한 연인들, 군침 도는 맛있는 음식, 으리으리한 단체사진, 각양각색의 셀카.. 중간중간 짧거나 혹은 긴 글이 보인다. 기쁨, 분노, 즐거움, 사랑, 그리움, 외로움, 알리기 위한 글, 질문하는 글, 이런 글, 저런 글.. 몇 십 명의 지인들이 각기 다른 시간에 다른 내용으로 올린 내용들이, 숨차도록 쏟아진다. 대개는 번쩍번쩍 멋진 소식들이다.  사람 사는 소식이 궁금해서 켰다가도, 이내 궁금증 이상의 홍수에 질려 곧 창을 닫아버리곤 한다.

 글을 확인하는 중에도 새로운 소식이 계속 올라온다. 그것들은 제일 위쪽을 차지한 채 잠깐 사이에 과거가 되어버린 옛 소식들을 아래로 아래로 밀어낸다. 그렇게 밀리고 밀린 소식들은, 흘러, 가버린다. 시스템이 도와주거나 따로 찾지 않는 이상, 아주 멀리 멀리 멀어져간다. 심지어는 그런 소식을 올렸던 적이 있던가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내가 올린 소식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잠시 화자 되었다가 휩쓸려, 흘러가버린다. 

아아. 나는 여기 있고, 못다한 이야기는 아직 많은데..



 중학교 1학년 때, 다른 학교 친구와 이메일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초등학생을 막 벗어나 갓 중학생이 된 우리는 마냥 설레고 또 막연했고, 세상이 궁금했고, 두려웠고, 스스로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처음엔 안부 묻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점점 깊어졌다. 차츰 서로의 마음이 흘러갔다. 컴퓨터 앞이라서 그랬을까. 서로 만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일까? 선뜻 하지 못할 고민과 이야기, 예를 들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상처와 아픔, 각자 가정의 이런저런 사연 등등을 나누었다.

 비록 얼굴을 대하고 대화한 건 아니지만, 글자 너머로 진솔함을 느껴 나도 그도 답장하는 데 신중했다. 그리고 컴퓨터로만 접속이 가능했던 당시 환경 때문에, 확인이 늦는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러니 짧으면 하루, 길게는 일주일까지 답신이 오지 않았다. 우리는 휴대전화가 없었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기다림은 대개 미치도록 궁금하고 답답했다. 마음이 급할 땐 무슨 일 있나 하며 수시로 메일함을 확인했다.

서로에게 깊이 귀기울인, 14살의 이메일 교류

 그러나 동시에, 기다림이 주는 유익도 있었다. 고대하던 답장이 오고 이젠 그가 내 이메일을 기다리는 동안, 여유를 가지고 그에게 무슨 말을 나누면 좋을지 깊게 생각하곤 했다. 심사숙고 끝에 오가는 대화는 신뢰를 두텁게 했다. 왜냐하면 문장을 즉흥적으로 쏘아버리는 게 아니라, 하나 하나 여러 차례 되새김 했던 까닭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걸 진심으로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차츰, 더 긴 시간도 여유롭게 기다리게 되었다.

 나도 그도, 가끔 '어딘가 털어놓고 싶었지만 부끄러워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사연'을 꺼내곤 했다. 진실은 때론 너무나도 불편해서, 서로 알지 못했던 모습에 놀라고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엔 가슴 깊이 수용되었다. 이해받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굳이 억지로 자신을 꾸미지 않아도 되었다. 젠체하지 않아도 되었다. 밖에서 보이는 외모보다, 속마음. 중심을 서로 바라보았다.


 시간이 흘러 어느 시점부터 그와 더 이상 연락이 오가지 않게 되었지만, 그 시절에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 돌이켜보니 지금의 글쓰기 습관 토대가 그때 형성된 것 같다. 또 기다림(인내)라는 덕목을 몸소 체험했으니, 중1 어린 나이에 참 귀한 경험을 했던 거다.



 회상하다보니 문득 어떤 마음이, 생각이 떠올라서 SNS에 글을 올린다. 그러나 이내 흘러가버린다.

흐름을 관조하다보면, 가끔 메일을 주고 받던 그 시간이 생각나고 그리울 때가 있다.

 즉흥적으로, 급하게 올리는 게 아닌, 메일 한 통 한 통을 보낼 때 들어가는 시간과 정성. 그 마음가짐. 불특정다수가 아니라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특성. 그래서 다른 이들의 이목은 신경 쓰지 않고,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고. 멋지고 자랑할만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아프고 슬프고 두려운 이야기도 나누며 이해받았던 경험. 서로의 마음이 깊숙한 곳까지도 흘러갔던 경험..


 감사하게도 SNS가 보급된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더 탁월한 도구들과, 여러 방법이 있다. 그러나 그 시절에 각별히 애틋한 향수를 느끼는 이유는, 그때의 내가 한없이 어렸기 때문일게다. 순수하게 마음을 흘려보냈던 14살의 나. 지금보다도 더 세상을 모르고, 사람을 몰랐던. 그래서 더 순수하고 순진한 마음이었던, 나.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봐야겠다. 14살 그 시절, 그 마음으로.

 오늘밤엔 SNS를 끄고 그 시절로 돌아가야겠다. 14살의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봐야겠다. 또, 지금의 나에게도 보내봐야겠다. 정성 들여서, 마음을 다해서. 남들 눈을 의식하지 않고, 빠른 흐름에 휩쓸려 이야기를 놓쳐버리지 않고. 다만 여기 멈추어 서서 기다려야지. 메일이 올 때까지. 그 뒤엔, 답장해봐야지. 시간을 두고 깊이 생각한 후에. 먼저는 상대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성찰하고 나서, 조심스레 적어봐야겠다.


 이 마음을 잊지 말자. 잃지 말자. 과거를 발판삼아, 앞으로도 사려 깊은 글을 써야겠다.


그때 그 시절처럼,

소중한 마음이 고요히 잘 흘러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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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표지 및 마지막: "Stars" by Roberto Weigand(https://www.facebook.com/roweigand/)

1번째: https://www.flickr.com/

2번째: http://www.pd4pic.com/

3번째: theluckyoneofficial.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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