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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Jul 12. 2017

"가끔은 고개 숙여도 괜찮아."

푹 숙인 그때 발견한 친구. 그리고 잊고 있던 세계 및 추억과의 조우

"고개 들어. 가슴 쫙 펴고!"


 어릴 적 종종 듣곤 했던 말. 웃자란 지금도 아주 가끔 듣는다.

그도 그럴게, 나는 땅 보기를 좋아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시절부터. '걷는 자세'라고 하면 위에서 주문한 '고개 들고 가슴 펴는' 것보다는, '땅바닥 세계'를 유심히 살펴보며 걷는 그림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그 시선 끝에 펼쳐진, 꼬물꼬물한 세상 또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던 이-따시만한(*당시 표현) 개미들. 이름모를 들풀들. 그 사이에 함초롬히 피어난 야생화들. 훌륭한 공기놀이 대상이던 오밀조밀한 돌맹이 혹은 자갈. 볼때마다 혹부리영감 이야기를 떠올리며 키득거렸던, 울퉁불퉁 돌출된 돌바닥길. 종족번식을 돕자는 사명감(?)으로 발견 족족 열심히 불었던 민들레씨. 어디 숨어있을까, 참 열심히도 찾았던 네잎클로버 등등. 이러한 세상은 땅바닥을 쳐다봐야만 관찰 가능한 세계이며, 내 유년시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소중한 추억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삶이 팍팍해졌다. 할 일이 많아졌다. 더 이상 시간개념 없이 마음껏 동네를 배회한다거나, 놀이터에서 해 지는 줄 모르고 흙장난하며 놀 수 없었다. 촘촘히 짜여진 학원 시간에 맞추어 집에 가느라 오로지 앞을 보고 걷는 데 집중했다. 학원이 끝나면 어서 집에 가야 했고, 집에 가면 숙제에 시달리거나 컴퓨터에 몰두했고.. '땅바닥 세계'는 어쩌다 한 번, 여유가 생길 때에야 잠깐 생각나는 정도였다. 그때보다 더 나이든 지금은 더하다. 고개 숙이고 있노라면 주위에서, 혹은 스스로, 다그친다. 'Never give up!'이라든가, '힘내!' 같은 메시지로. 이 시대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성공.성취'는 마천루 같아서, 고개숙인다는 것은 마치 실패인 듯 여겨진다.


 하지만 며칠 전, 참 우연히도 즐거운 경험을 했다. 아침 피곤에 절어 비몽사몽, 고개를 푹 떨구고 터덜터덜 걷는데 글쎄, 이런 광경이 갑자기 훅 다가왔다.

얘, 거기 있으면 큰 일 나..

 웬 달팽이가 길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정신이 번쩍 났다. 조금만 왼쪽으로 발을 딛었다면, 본의 아니게 이 녀석을 밟았을 것이기 때문에. 수업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개의치 않고 쭈그려 앉아 이놈을 멀끄러미 바라보았다. 꾸짖듯 말을 건넸다. "얘, 여기 있으면 큰 일 나. 내가 발견해서 망정이지.." 제아무리 뒷길이라도, 강의동 후문이라 사람이 오가는 곳이다. 그러나 이 녀석은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하긴. 얘가 알 턱이 없지. 괜히 구시렁거리며 더 관찰했다.

 남이 쳐다보건 말건, 이 녀석을 빤히 보고 있자니, 웃음이 터졌다. 참, '땅바닥 세계'를 굽어본지도 꽤 오래됐네. 그저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를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관심도 없이. 전진. 돌진. 약진. 하늘은 자주 쳐다보면서, 딛고 선 땅은 새카맣게 잊고 살았네.

 가만. 저 풀 이름이 뭐더라? 예전엔 알았는데.. 저 꽃은 뭐지? 못 보던 건데 예쁘네.. 참 오랜만에, 잊고 있던 세계와 조우했다. 동시에,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담은 파노라마 또한 지나갔다.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었다. 요 조그만 달팽이 녀석 덕분에. 고맙기도 하지!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다

 이 고마운 녀석을 조심스레 집어, 그나마 물기를 많이 머금은 화단으로 옮겨주었다(애석하게도 달팽이의 생리에 대해서는 잘 몰라, 최선의 선택이었다.). 늘 그랬듯 빳빳이 고개를 쳐들고 앞만 보고 걸었다면, 피곤해서 축 쳐진 고개를 용납하지 않고 무시로 걸었다면? 이 녀석은 물론이거니와 잊고 있던 세계, 그리고 어린시절 추억과도 만날 일이 없었으리라.


 이 친구가 내게 속삭이는 듯하다.

 "그래. 가끔은 고개 숙여도 괜찮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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