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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Oct 09. 2017

잊혀지다, 간직하다.

같은 글감, 그러나 주제가 다른 두 편.

#1 잊혀지다

(*'잊히다'가 올바른 표현입니다.)

시詩가 아니라 산문.



#2 간직하다

(글감 '잊혀지다' 를 다르게 쓰다)


 언젠가부터 사람을 만나 좀 더 깊이 관계를 맺게 되면, 기대감과 동시에 이별 또한 생각하게 된다. 참 이상하기도 하지. '해괴하잖아. 관계는 이제 막 시작인데.' 하며 생각을 단속해보아도, 이내 묘한 너털웃음이 터져 나온다. 무척 짧은 세월을 살았지만, 좁고 깊게 사람을 사귀는 까닭에 이런저런 헤어짐이 마음결에 하나하나 아로새겨져 있다.


남녀노소. 스승님, 동료, 친구, 손윗사람, 손아랫사람. 학생, 나그네 등등.
만나게 된 계기, 장소, 깊어지게 된 과정.사연. 공유한 경험, 감정, 이야기.
함께한 시간. 마지막 기억 등등.

사연 없는 인생 없듯, 만남과 헤어짐도 그 모양이 참 다양하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일시적으로 헤어지는 게 대부분이지만, 어떤 이들은 영영 헤어지기도 한다. 서로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부족함, 연약함, 오해, 변심.. 나와 상대방, 한때 '우리'였던 관계는 종언을 고한다. 관계는 서로 얽힌 거니 함께 풀어야 한다고, 결국 헤어질 사람은 헤어지게 된다고, 위로해본다. 그러나 꼭 내 잘못인 것만 같아 자주 씁쓸하고 외로워지는 이별이 있다.

 한편, 서로 참 많이 좋아했고 별 탈도 없었으나 다시는 만나지 않는 사이도 있다. "다음에 보자"는 작별인사를 할 때, 나와 상대 양쪽 다 해맑게 웃으며 진심으로 말을 꺼냈다. 하지만 뒤돌아서는 순간, '아, 이 순간이 이 사람과의 마지막이겠구나..'하는 기묘한 예감에 크게 놀란 적이 있다. 한 번도 아니고, 꽤 여러 번. 슬프게도 그 예감은 들어맞아, 아직까지도 그들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가끔 기억이 떠오르면, 속절없이 미소 지을 뿐이다.

 그 외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모양을, 이별은 지녔다.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게.


 만남 속에서 문득 이별을 생각하게 되면, 가슴 어딘가가 지그시 아려온다. 모든 게 덧없을 허무주의가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간직하게 된다. 내가 이 사람 곁에, 이 사람이 내 곁에 머무는 지금을. 차곡차곡, 오롯이 새긴다. 시간들은 켜켜이 쌓여, 어느 순간 추억으로 그러모아져 고인다. 그러면 훗날, 어떻게 헤어졌든 그 관계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이 남는다. 헤어짐을 묵상할 때 찾아오는 '은근한 아릿함'에 대한 반작용이 아닐까?

 그렇기에 언젠가의 작별을 예감하더라도, 감사하게 된다. 한 번은 '지금 이 시간'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은, '이별 후 내게 남은 것들'. 그 사람과의 추억이라든가, 머물렀던 마음 등등에 대해. 어쩌면 상처까지도..

 끝끝내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과 성숙 끝에, 기다리게 된다. 봄과 꽃이 또 오고 가고, 피고 지듯이 다가올 새로운 만남과 관계맺음을. 겸허한 마음으로. 참 역설적이다.


 글을 맺으며 지금 내 곁에 머무르는 많은 이들, 또한 머물렀다 떠난 많은 이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당신과의 시간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는 소박한 염원을 함께 담아...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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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 Seryuah@naver.com

*모든 독자님께 열려 있습니다^^


작가의 말 :

 어느 시점부터인지 모르겠습니다. 제 안에서 길어낼 글감은 다 말라버렸어요. 게다가 약 2년 간 거의 같은 방식(*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다들 비슷하게 생겼더라구요.)으로 글을 써서 그런지, 약간 권태로움도 느낍니다. 스스로 정한 '글다운 글'의 기준도 점차 까다로워지고.. 당분간은 글쓰기 어플 도움을 받아야겠어요. 짤막하게 적고, 좀 더 쓰고 싶다면 확장하고. 마치 이 글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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