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걸쳐 해야 할,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
볼일을 다 본 뒤, 집에 가려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도심 번화가를 한참 무질러야 했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은 곳이지만, 주말 저녁인 탓에 더더욱 많았다. 아찔했다. 몹시 피곤했다. 공허했다. '어서 돌아가 쉬고 싶다.' 그 생각 뿐이었다. 문득 세상이 너무 빠르고 복잡하다고 느꼈다.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듯했다. 공허했다.
멍하니 걷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워섬겼다. 지하철역에 도착하기까지.
지하철에 타 자리에 앉아, 관심 가는 정보를 찾거나 뉴스를 봤다. 몰입했다. 그래도 공허했다.
집 근처 역에 내렸다.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음색과 리듬, 가사에 빠져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공허하더라.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 방으로 향했다. 문을 닫자 외부와 차단됐다. 나와, 나만의 공간이 남았다. 안도하며 스르륵 허물어졌다. 그냥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한참을.
무엇이 이토록 나를 힘들게 하는지? 이미 스스로에게 몇 번을 답했었다. "애쓰기 때문에."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애쓰는지?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자면_어떤 때는 알았다가, 어떤 때는 모르겠다. 사명/비전 성취. 행복해지고 싶어서. 인정 받고 싶어서. 사랑 받고 싶어서. 잘 살고 싶어서.. 이 범주를 벗어나진 않는다.
다만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사람마다 제각각 짊어진 삶의 무게가 있다. 대개 감당이 될 분량이지만, 때때로 너무 지치거나, 무게가 과중해지면, 평소에 잘 견뎌왔던 것조차도 힘들어진다. 그런 시기가 오면 어떤 이들은 불굴의 의지로 일어나 극복한다.
그러나 나는, 스르르 허물어져 웅크린다. 가장 낮고 작은 자세로 웅크린다. 아래를 향한다. 아래로 아래로 의식을 뻗어, 균열이 생기고 형편없이 망가진, 마음과 영혼을 더듬는다. 직시하려 한다. 몹시 초라한, 상처로 얼룩진 내가 거기 있다. '저게 나야? 아니야! 난 멋진 사람이란 말이야!' 항상 부정한다.
하지만 이내, 혐오는 연민으로 바뀐다.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이 흐른다. 애쓰느라 모른척 덮어놨던 아픔과, 그게 쌓이고 쌓인 앙금이 드러난다. 긁어낸다. 더 볼품없는 상처와 흉터가 드러난다. 치료받지 못한, 채 아물지 않은 것들이. 무덤덤했던 통증까지 한 번에 몰려온다. 이내 격렬히 마음을 뒤흔든다. 격동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눈물 농도는 짙어져만 간다. 마침내 깊숙한 어떤 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온다.
아파.. 힘들어..
간신히, 간신히 뱉어낸 이러한 언어가 허공에 흩뿌려진다. 그리고 곧, 은은한 평안이 찾아온다. 온 존재를 보듬는 어떤 평온함이. 마치 신의 애정어린 손길처럼.. 그 물결에 압도되어 그저, 은총을 기다리듯 잠잠히 젖어있을 뿐이다.
깊은 위안과 평온함이 사풋이 내려앉아 조요히 스며들 무렵, 웅크린 마음을 조심스레 일으킨다. 여전히 어딘가 깨지고, 갈라지고, 상처 입은 모습. 그러나 마음결 어딘가는, 아물어 좋아졌다. 튼튼해졌다. 아주 미약하지만, 반복되다 보면 강해지리라. 차츰차츰.
이러한 시간을 마치면, 손을 모아 잠시 신에게 감사 기도를 올려 보곤 한다.
외롭다고, 힘들다는 걸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게 왜 이리도 어려운지.
나와 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인데, 왜 다른 데서 그 이유를 찾는지.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하는지.
다른 사람도 아닌 나에게, 왜 그리 솔직하지 못한 건지.
어렵고 힘든,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일까?
나를 대면하는 작업은 아마 평생에 걸쳐 해야 할, 어렵지만 가치 있는 큰 일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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