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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Sep 23. 2015

고마움을 표현하세요

용기가 필요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걸요.

 우리는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살아간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작든 크든,  상관없이 호의엔 '마음'이 담겨 있다. '어떤 사람의 마음'은 '그 사람'을 반영한다. 이는 겉으로 보이는 외모나 행동보다도 더 깊은 차원을 담고 있다(우리가 늘 간과해서 그렇지, 이 사실을 우리는 육감으로 알고 있다). 즉 호의를 주거나 받는 건, 내 일부를 주거나 남의 일부를 받는 거다. 그러면서 서로의 불완전함을 완성해간다.


 얼마 전에, 옆 학교에 갈 일이 있었다. 친한 후배를 만나 함께 기도하기 위해서였다.

 기도가 다 끝나고 난 뒤,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위층에서 무슨 행사를 하니 거기 가보자고  권유받았다. 호기심에 따라갔더니 '감사편지 쓰기' 행사를 하고 있었다. 편지를 쓰면 학생회에서 보관했다가 주중에 연락해서 수신자가 받아가도록 돕는다고 했다. 수신 대상은 '학생회에서 연락하면 받으러 올 수 있는 분들', 다시 말해 재학생 혹은 임직원 등이었다. 편지 쓰기도 무척 좋아하고, 감사한 사람도 참 많다만. 이 학교 학생 중에서..?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어느 동생이 떠올랐고, 고마운 마음과 격려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나를 데려온 후배도 어느 교수님 앞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글로 마음을 전할 때, 나는 보통 "안녕" 혹은 그 사람의 이름으로 시작한다.

 가슴속에 담긴 마음을 정성 들여 종이 위에 길어 올렸다.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단 하나뿐인 '이름'을 먼저 적고, '안녕'으로 상대의 마음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쭉 적었다.


 그런데 반쯤 썼을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고맙고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은 좋지만, 평소에 그리 친하지 않았다는 점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호의를 베푼다 해도 받는 사람이 찝찝하거나 불편하다면, 서로가 힘들어지는 거니까.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과연 그걸 '친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몇 차례의 경험 때문에 호되게 아픈 적이 있어 더욱 망설여졌다. 거절감의 아픔이 매섭게 휘몰아쳤다. 펜을 잠시 멈추고, 마음 길어 올리기를 그만 두었다. 없던 일로 해버릴까? 나 혼자 너무 들떠있는 거 아닌가? 괜찮을까?

 결국 어찌저찌해서 글을 마무리짓고, 편지 전달을 부탁했다. 만일 전처럼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그때 가서 자세하게 해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조금 슬퍼졌다. 사심 없이 좋은 마음, 좋은 의도로 시작했는데도 왜 끝에 가선 이런 걱정을 해야 하나.. 단순한 호의였는데 오해가 되고, 그래서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비난받았던 몇몇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과거의 잔상이 깊게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다. 부디 이번엔 그러지 않기를. 편지를 맡기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아갔다.


'편지 인증샷'. 고맙습니다. ^^

 발표 준비로 워낙 바빴고 또 아무 기별도 없어서, '그냥 그런가 보네.' 하고 지냈다. 그런데 발표수업이 끝난 뒤 그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편지 인증샷'과 함께. "깜짝 놀랐고, 정말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천천히 읽는데  마음속에서 뜨거운 게 울컥했다. 나도, 진심을 알아줘서 고맙다고 답장했다. 멋대로 재고 더하고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줘서 고마웠다. 발표를 끝냈다는 안도감도 겹쳐서 더욱 홀가분했다. 밖에 있는 조용한 벤치에 앉아 차분히 심호흡했다.  고맙습니다,라는 나지막한 한 마디와 함께.

 어쩌면 이 친구도 내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거다. 그 덕에 감사함을 함께, 더 깊이 나누게 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다른 이에게 호의를 받았을 때,  마음속으로만 간직하지 말고 직접 표현해야 한다.'우와. 고맙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겠지?'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을 거야.''꼭 표현해야 알아? 눈치껏 알겠지..'아니다. 표현해야 안다.당신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었을 때 기대하는 것처럼,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호의(마음)에 대해 감사를 표하기.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자. 쑥스럽고 두렵고 어색하고 괜한 짓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더더욱 표현해야 한다. 잊지 말자. 상대방도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비록 완전히 같진 않아도, 내 느낌과 생각을 상대방도 느낄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진심은 말과 행동을 뛰어넘어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걸.

또 감사함은 혼자보다 둘이서, 둘 보다 여럿이서 함께 나눌 때, 더 깊어진다.

(눈치 빠르신 분들은 알아채셨겠지만, 이 글이 그렇다. 나와 그 친구 사이의 감사함을, 여럿과 나누기 위해 썼다. 이 글을 본 지인들과 나눴을 때, 감사함의 열매는 더 커지리라 ^_^)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고마움을 직접 표현해보는 건 어떨까요? 당장 떠오르는 사람부터.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괜찮아요. 일단 해보세요. 전 지금 무척 기쁘거든요.

여러분도 같은 기쁨을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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