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불로 아버님과의 시간을 산다.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집에만 머무는 요즘 같이 경기가 안 좋을 때,
그나마 작게 작게 매출을 올리고 있는 가게가 있다고 한다.
Bunnings warehouse와 K-mart가 그 주인공이다.
Bunnings warehouse는 남자들의 올리브영 같은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집에 필요한 전구, 타일, 나사부터 시작해 모든 공구와 식물, 캠핑 장비 등 다양한 제품과
기계들을 파는 가정용 하드웨어 체인점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한 두 개의 spanner 혹은 screw driver를
앞치마 넣고, 워커를 신은 버닝스요정들이 손님들을 반겨준다.
요즘 다들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사람들이 조금씩 자기 집에 관심을 가지고 미루었던 일들을 하나씩 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당에 벽돌을 깔아 작은 길을 만들고, 집의 이곳저곳을 손보면서,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 이곳으로 몰린다고 한다.
K-mart는 좀 많이 떨어지는 한국의 다이소 같은 곳이다.
옷에서부터, 신발, 어린이 장난감, 책, 가구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다양한 물건들을 값싼 가격에 파는 곳이다.
이곳이 작게나마 매출을 올리는 이유도 재미있다.
집에만 있는 어린이들과 어른이들을 위해 각종 보드게임과 실내 스포츠 용품, 2000 piece puzzle과 같이
시간을 보내기에 적절한 아이템들을 구매하러 가는 것이다.
나도 지루한 일상에 재미있는 단비를 적시기 위해 K-mart에서 루미큐브를 구입했다.
멜버른으로 이주해 회사를 다니는 형님,
매일 각자의 방에서 자택 근무를 하지만, 식사 때 말고는 얼굴 보기 힘든 아들내미 둘.
어머님 아버님은 늘 2층 거실 소파에 앉아 계신다.
Easter Holiday라 공휴일인 지난 월요일, 모두가 집에 있을 때
(매일 일도 안 하고 쉬고 있는 데도, 공휴일에는 더 놀고 싶은 나의 마음이란.)
2층으로 올라가 아버님께 말했다.
"아버님 숫자에 좀 강하세요? 저랑 게임 한 판 하실래요?"
"어떤 게임인데? 숫자라면 내가 자신 있지."
거실에 판을 깔았다. 아버님께 루미큐브 게임 룰을 알려 드린 뒤, 연습게임을 했다.
연습 게임으로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으신 아버님이
갑자기 테이블 위에 50불짜리 지폐를 탁 올려놓으셨다.
"뭘 걸고 해야 재밌지? 너도 얼른 돈 가져와"
"아버님, 재산 탕진하시지 마시고, 넣어두세요. 10불부터 시작하시죠."
"아버님! 다른 색깔은 같은 숫자, 같은 색깔은 순서대로 오케이?"
"여보가 나랑 같은 편이 되어서 좀 도와줘"
뒤에서 보고 계시던 어머님께 아버님이 sos를 치셨다.
"자존심 상하게 어떻게 둘이서 같이 해"
아버님의 순서가 되어 패를 내려놓으실 때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참을 기다려야 해서 조금은 답답했지만, 이리저리 숫자를 맞추려고
노력하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문득 한국에 있는 우리 엄마 아빠가 생각이 났다.
설 명절에나 가족들과 다 같이 윷놀이를 해보았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자리를 마련해서 아빠랑 이런 게임을 한 적이 있었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지고, 언젠가 한국에 가게 된다면 꼭 아빠랑 단 둘이
재미있는 보드게임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봐. 1,2,3,4... 이건 안 되고, 그렇지 잠깐만 잠깐만.. 그렇지 이렇게!"
하며 내려놓으신 패는 알록달록 다른 색깔 순서대로 456.
가만히 보고 계시던 어머님께서
"여보, 그건 아니지. 그게 아니고 이 7을 저기에 뒤에 붙여"
라고 하시며 빨간색 7을 456 숫자 덩어리 뒤에 붙이셨다.
"어머님, 같은 색깔은 순서대로, 다른 색깔은 같은 숫자끼리. 그럼 4랑 5도 똑같은 빨간색이어야 해요."
"아! 그렇네!"
라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는 어머님과 그런 어머님을 바라보시는 아버님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참을 하시곤 아버님에게서 10불을 땄다. 10불짜리 지폐를 이마 위에 붙이곤 승리의 감격을 누렸다.
20불짜리 보드게임 하나로, 어머님 아버님과 이렇게 재미있게 놀 수 있다니.
20불이라는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Time is money. 시간은 돈이라고 한다.
각자의 시간은 소중하고,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 하는 우리들은
일하기에 공부하기에 연애하기에 바빠, 정작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은 많지 않다.
바쁜 자녀들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할라치면, 식당을 미리 예약하는 것 마냥 스케줄을 미리 잡아야지
함께 먹을 수 있다. 단지 밥을 꼭 같이 먹고 싶어서라기보다
회사일은 어떤지, 요즘 힘든 일은 없는지 이런저런 질문으로
자식과 대화하고 싶으신 부모님의 특별한 시간인걸 왜 이제야 깨닫게 되었을까.
점심은 먹은 뒤, 나는 10불짜리 지폐를 들고 아버님과의 시간을 사러 간다.
루미큐브 상자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간다.
"아버님, 아이스크림 내기 한 판 어떠세요? 저는 붕어싸만코가 먹고 싶은데?"
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나에게 아버님은
"좋지! 이번에는 나도 절대 질 수 없어."
사람들은 이 시기를 버텨내기 위해 누군가는 집을 고치는데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고, 요리를 하는 등 새로운 취미에 시간을 쏟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매일매일의 시간들이 헛되게만 마냥 흘러가버릴까 봐.
이렇게 2020년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끝나갈까 봐.
일상에서의 소소한 성취를 이루려고 한다.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을까?
누구의 시간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부모님의 현재와 미래의 시간은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는 글쎄.. 조금 힘들지 않을까.
30년 40년이 흘렀을 때, 아무리 많은 돈이 있다 할 지라도
나에게 여유로운 시간이 많다 할 지라도
지나가버린 세월 속의 부모님과의 시간을 살 수 없을 테니까.
오늘부터 조금씩 조금씩 부모님과의 시간을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