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파란 여행

법정스님 만나다

by 한명화

불일암을 찾아 새벽을 깨우고 달려

스님의 발자욱 담긴 무소유 길 따라 걸으며

무소유 누리는 법 알려주신 글판 앞에 서니

조용한 스님 음성 들리는 듯

언제인가 38 휴게소

하얀 반팔 상의에 승려복 바지 입으신

당당한 걸음 비범한 눈빛의

스님 만났으나 무심히 스치고

이제야 이승 떠나신 스님을 만나러 왔다


떨리는 마음 다스리며 마주한 불일암

소박한 암자 댓돌 위에는 오랜 시간 지나

삭아 내리고 있는 흰 고무신 한 켤레

방금 벗어 두고 방에 드신 듯 가지런하고

처마 밑 현판에는

세상 살이 이렇듯 살았노라 남겨둔 글귀

살어리

살어리 랏다

청산에 살어리 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 랏다

스님 낭랑하게 강론하고 있었다

댓돌 옆 벽에 눈높이에 걸린 사진 속

활짝 밝은 미소의 스님 반겨 인사 나누고

뒤돌아서 한 두 발짝 마주 보는 앞

가장 사랑하셨다는 후박나무 옆에

스님의 유언대로 영면해 계신다고

저처럼 작은 터에 이끼 이불 덮고

행여 밟지는 말라고 대나무 묶어 세워 두었구나


살아생전 실천하신 무소유의 외침

가신 후 지금도 실천하고 계시는데

도대체 손에 든 것 너무도 많고

등에는 또 얼마나 짊어졌는지

무소유의 실천이 참으로 어려운 것은

나 오늘을 살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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