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기다릴께

동지 팥죽

by 한명화

12월 22일

역사를 꺼내면 길어져서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날

동지 팥죽 먹는 날


어린 시절 동지에 어머니 부엌

찹쌀 새알 많이도 만들어 놓고

붉은팥은 푹 삶아 걸러 껍질 빼고 끓이다

불려 두었던 찹쌀이랑 새알이랑 넣고

가마솥에 휘저어가며 끓여서는

양푼이랑 대접 줄세워 두고

커다란 그릇으로 푹 퍼서

식구 많은 집은 양푼에 담아 보내고

식구 작은 집은 대접에 담아 보내던

어머니 부엌에서 심부름하던 꼬맹이 투덜투덜

'다 나눠 주면 우리는 무얼 먹냐고

맛있는 팥죽 한번 더 먹을 건데'

어머니는 웃으시며

팥죽은 복을 나누어 먹는 거라고

욕심부리면 복 못 받는다고 말씀 하셨는데


엊그제 마트에 팥이랑 찹쌀 사러 갔다가

팥죽 홍보하시는 분 작은 컵에 팥죽 담아 주시며

'요즘 팥죽 누가 끓여요

국산 팥으로 만든 팥죽 사다가 드세요

다들 그렇게 해요'라고

어라ㅡ그 말도 맞네 맛도 좋고

귀가 솔깃해서 팥죽 몇 봉지 사왔어

오늘은 동지

사다 둔 팥죽 데워서 아침 식탁에 올렸지

어쩌겠어

가마솥도 없고 팥도 삶아야 하고

떡집에 가서 사정하며 찹쌀가루도 사 와야 하고

그래 잘했어

정성은 따르지 못하지만 팥죽은 먹었잖아

왜 인지 미안한 마음에

스스로 마음 다독이는 동짓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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