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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릴께
문득ㅡ그녀는 어디에
by
한명화
Jan 11. 2020
작가의 싸인ㅡP.sophia.83
아주 오랜
아니 정확하게 35년 전인가 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육사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 원은 동네에서 으뜸으로 인정받았고 동네
사람들이랑 어르신들의
사랑방이었다
늘 북적이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님들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까지 원 앞 길 옆에 모여 막걸리 한주전자 내놓으면 쌀집 아줌마는 안주거리를 내놓고 이야기 잔치가 끊임없었고 언제나 즐겁고 행복했었다
어느 가을날
누군가 우리 원 앞에 두루마리 그림을 두고
갔고
출근길에 만난 이 성화는 가슴이 따뜻한 느낌의 그림이었는데 누가 이곳에
두었는지
버린것 같지는 않아 그냥 지나쳐 왔는데 왠지 자꾸 마음 쓰였었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에도 그곳에 두루마리가 있었고 어제보다 조금 험해졌기에 안타까움에 들고 와 지저분해진 곳을 조심조심 닦아서 창가에 잘 펴서 걸었는데
창을 통해 투과되는 빛에 보이는 그림은 너무도 멋진
작품이었다
주인이 나타나겠지 그동안 이곳에 걸어두어야지
그림을 바라보며 그린이는 어떤 사람일까 왜 이곳에 버려두었을까? 궁금했다
일주일도 더 지나 꾸밈없는 옷차림의 우수에 찬 여자분이 사무실 앞에서 기웃대는데 느낌으로 그림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들어오시라며 살펴보니 조금 이상이 있으신 듯 불안한 눈길로 조심스레 들어와서 창가에 걸린 그림을 보더니 울먹이며 말했다
이 그림은 자신이 그린 것이고 이 싸인은 자신의 것이라며 본인은 이 그림을 간직할 수가 없어 아마도 원장님이 이 그림을 보시면 잘 간직해 줄 거라는 생각에 문밖에 가져다 놓고 멀찍이서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행여 다른 이가 가져갈까 봐 밤에는 가져갔다가 아침에 다시 가져다 놓기를
내가 들고 들어올 때까지 며칠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한참을 울먹이다 마음이 안정이 되었는지 차분해진 목소리로 가져와줘서 고맙다며 부디 잘 보관해 달라는 것이다
가슴이 뭉클했다
어떤 상황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알지도 못하는 내게 왜 가져왔느냐고 묻자 이 동네서 살고
오며 가며 원장님 이야기를 듣고 또 보아 왔다며
그래서 부탁하고 싶었다고
이 작품을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느꼈기에
그에게 말해 주었다
언제든지 작품이 보고 싶으면 아무 때나 이리로 오면 된다고
그 후로 한 10여 년 그녀는 찾아오지 않았고
우리는 이사를 했다 그녀의 작품도 함께
그리고 표구를 해서 항상 이렇게 거실에 걸어두었다
거실 전면의 성화를 볼 때마다 마음이 찡해지며 문득문득 그녀를 생각한다
오늘 아침 문득
그녀의 모습 선명하게 떠올라 궁금하다
강산이 3번이나 변하고 또 반도 더 변해가는데
그녀는 어디에 잘 살고 있는지
앓고 있던 아픔은 다 이겨냈는지
이 성화를 생각하고 있는지
아직도 이렇게 잘 보관하고 있는데
찾으면 돌려주며 말해주고 싶은데
오랜 날들 이 성화와 함께하게 해 주어 정말 고맙다고 그리고 알지 못하는 날 소문만 듣고 믿어주어 또 고마웠다고
제발 그녀가 건강히 잘 살고 있기를 바라며
그녀의 간절한 눈빛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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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화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출간작가
찔레꽃 안부
저자
삶의 날들에 만난 너무도 좋은 인연들의 사랑에 늘ㅡ감사하며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아직도 마음은 소녀랍니다 은빛 머릿결 쓸어 올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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