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의 누각 풍화루를 지나 잘 가꾸어진 길을 따라들어가니 고유의 멋스러운 건물은 향촌이었는데 이 고을수령과함께지역민에 대한 지배를 분담하는지역 사대부들의 독자적인 기구라는데타지에서 온 수령이 독단적으로 지배하지 않도록 견재하며 다스리는 지혜이다 싶었다
안으로 더 들어가자 작청이 있었다
고창읍성의 특이점은 모든 건물의 마루에 신발 벗고 올라가 쉴 수 있었는데 가을날의 청명한 하늘과 마당?에 펼쳐진 푸른 잔디,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은 드디어 우리의 신발을 벗개 하였다
작청의 마루에 앉아 어린 시절 대청마루를 느껴보며 여행지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고
마루에 앉아 살펴보는 우리 선조들의 건축술은 그저 놀라움이었다
그 어느 곳에도 못을 쓰지 않고 깎아서 끼워 맞추고 있었는데 그 정교함에 입을 다물수 없었다
거의 30여분 가까이 작청마루에서 여유를 즐기고 나와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입구 쪽으로 나오니 옥이 있는데 마침 그 앞마당에서 마당극을 하고 있었다
우린 자리를 잡고 마당극에 빠졌는데 중간에
연기자가 진도 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르더니 진도아리랑 쪼끔? 부를 수 있는 분 나오면 복분자 먹은 장어탕을 선물로 준다며 외치는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아 나가서 구성지게 한판 놀아볼까? 라니 짝꿍이 굳이 말린다
놀이판에서 흥을 맞추는 것인데 못해도 창피한 게 아닌데 굳이 말리시니 아직도 서운하네ㅡㅎ
아무래도 더 있다가는 안될 것 같은지 이제 퇴청? 하잔다
밖으로 나오니 매표소 앞 잔디밭에 여인들이 머리에 돌을 이고 있는 여인상이 있었는데 이는 답성놀이로 여인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한 바퀴 돌면 무병장수한다는데 글쎄 혹시 고창성을 쌓을 때 여인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나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바로 앞쪽에 자리한 동리 신재효 선생의 초가집이 있어 들어가 보니 집에 비해 유난히 큰 우물이 인상적이었으며 작은 초가에 제자들을 양성하는 방도 있었는데 동리 신재효 선생은 광대소리 등 서민 판소리 문학의 대가로 광대소리의 이론을 집대성하였으며 서민 판소리 문학의 이론, 연출, 판소리 사설의 창작등 판소리 문학을 필생의 대업을 이루신 분이라 했다
또 바로 옆에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판소리를 알리는 고창판소리 박물관이 있어 들어가 보니 판소리의 역사와 자료 또 유명한 명창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김소희 님의 특별전도 열리고 있었다
그곳을 돌다 전시되어 있는 북이 있었고 신발 벗고 들어가라는 안내는 북을 체험해 볼 수 있다는 뜻으로 들어가 잠시 고수가 되어 보았는데 배운 적은 없지만 백문이 불여 일견이라는 말에 딱 맞게 제법 고수의 흉내?를 내 보았다
나오는 길에 고창 미술관도 있었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많이 아쉬웠다
그러고 보니 고창읍성을 중심으로 문화예술을 다 관람할 수 있도록 계획적으로 이곳에 다 모아놓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