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기다릴께

제발 비라도 실컷 내려 주었으면

by 한명화

며칠 째

들려오는 소식 우울

작년에도 또 재작년에도 몸서리쳤던

산불의 잔인함에

집도 세간도 집안의 역사도 다 잃고

슬픔조차도 달아난듯한 허탈한 모습들

올해도 그냥 갈 수 없었나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산불의 위력

무섭도록 시뻘건 화마는

거의가 부주의로 인한 인재라는데

무심코한 행위 하나의 작은 불씨에

강풍은 날개를 달아 놓았다

시뻘건 불꽃이 산등성이로 날아다니고 있다

마을도 예외가 아니다

또다시 수백 체의 집들이 소실되어

그 안에 잠겼다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도 모두 가져가 버렸다

물건은 다시 살 수 있고

집은 다시 지을 수 있는데 ㅡ

어느 노인의 한숨으로 토해낸 말씀

겨우 조상님들의 사진만 가지고 나왔다고

그렇구나

그것이 자식 된 도리인가 보구나

며칠째 산불진화에 나섰던 소방관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며칠 밤낮을 산불과 싸우며 얼마나 기진했으면ㅡ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고개가 숙여진다


오늘도 날이 밝았고

또다시 산불 진화의 현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 흘린 노력으로 진화에 나설 것이다

또 집을 잃고 허탈해하시는 많은 이재민들은 그 마음이 타버린 집 보다 더 까맣게 타들어 갈 것 같다

하늘이 우울하다

제발 비라도 실컷 내려 주었으면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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