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 전 미소년이었던 짝꿍은 양구 가칠봉에서 3년에를 근무했다며 그곳을 보고 싶어 했다
양구에 왔으니 이번 코스는 6.25 참전용사를 기리는 전적비를 만나러 가는 길가에서 저 멀리 가칠봉 1242 고지가 보인다
민간인 신분으로 가볼 수 없는 그곳을 보며
예전에는 산길을 돌아 돌아 저 꼭대기까지 걸어 다녔다며 그 시절 이야기를 한다
6.25 때 전투가 얼마나 심했으면 근무 당시 무수한 탄피와 녹슨 철모 등 이곳저곳에 죽엄의 흔적들이 많았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발굴이나 전사자들의 유해를 따로 모시라는 지시 같은 것이 없어 그냥 지나치는 일들이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신다
길가에서 가칠봉을 바라보며 추억을 되새기고 다시 출발 한참을 달려 길가에 세워진 피의능선 전투 전적비 앞에 차를 세웠다
왠지 글만 읽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주차장에서 몇 계단을 올라 안내문을 본다
ㅡ피의능선 전투는 휴전회담을 진척시키는 동시에 서로 더 많은 요충지 확보 목적에
10~20km 지역에 위치한 수리봉일대의 확보를 위해 뺏고 빼앗기기를 수차례로 많은 국군장병들의 희생에 공격작전 완수 현장.
뺏고 빼앗기를 수차례라니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 능선을 흘렀으면 피의능선이라 할까 가슴이 메여온다
계단을 올라 전적비 앞에서
ㅡ영령들이여 감사합니다 편히 잠드소서ㅡ라는 묵념을 올리고는 전적비를 한 바퀴 돌며살펴본 후 피의능선 전적비를 떠나 이제는 펀치볼 지구 전투 전적비를 향했다
길가 산 중턱에 세워진 전적비
주차할 곳이 없어 지나쳐 농가의 비닐하우스 앞에 차를 대고 다시 걸어 전적비를 향했다
계단 입구 안내 게시판에
ㅡ1951.8.29~10.30 일까지 60여 일이 넘게 서화리, 가칠봉, 피의능선, 1,211 고지, 무명고지 일대를 중심으로 한 전투에서 육군 3,5사단, 해병 1사단, 미군 2,7,25사단 등이 서로 뺏고 뺏기는 전투에서 수많은청춘들이 피를 흘리며 산화되어 간 가슴아픈 곳 ㅡ
계단을 올라 전적비 앞에서 젊은 영령들에게 묵념을 올리고 전적비를 살펴보며 돌아보다 전적비 뒤에서 올려다보니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