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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파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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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화 Jan 19. 2023

조선왕조의 열녀 화순옹주

화순옹주 녹원삼 캡쳐
김한신과 그의 아내 화순옹주의 합장 묘
영조친필 비

역사의 깊이가 낮아서 화순옹주를 이곳에 서야 알 수 있었다

추사의 고택과 전시관을 돌아보고 그 가까이에 있는 화순옹주 홍문을 찾았는데

홍문 앞 안내글에는

영조의 둘째 딸이자 김정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는 13살에 영의정 김홍경의 아들 김한신과 결혼했다

김한신이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화순옹주는 14일을 굶어 남편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옹주가 죽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고 죽었으니 불효하였다 하여 열녀문을 내리지 않았으나 후에 정조가 열녀문을 내렸다

화순 옹주는 조선왕조에서 유일한 열녀다

라는 설명서를 읽고 화순옹주의 사연을 알았기 때문이다

홍문 앞으로 갔다

이 홍문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5호였다

홍문은 묘막터 정문 위에 쓰여있었는데 한문으로 쓴 글을 한글로 옮겨보면

ㅡ열녀수록대부월성 위 겸 오위도총부도총관 증시정효공 김한신 배 화순옹주 지문상지 7년 묘 1월 12일 특명정려ㅡ라고 쓰여있다

홍문 안으로 들어가니 건물은 없고 주춧돌만 남아 그 옛날의 건물을 말하고 있었다 묘막터는 53칸이었다 한다 그러나 현재는 불타 없어지고 주춧돌만 남아있었다

홍문을 돌아보고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가고 또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남편을 따라간 옹주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느끼며 겸손한 마음이 되었다

홍문을 나와 가까이에 있는 묘지로 향했다

남편 김한신과 아내 화순옹주의 합장묘였다 남편이 죽자 14일을 식음을 전폐하고 따라갔으니 합장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조께서 직접 썼다는 묘지 비석을 바라보며 이 비문을 쓴 아버지 영조의 깊은 슬픔이

전해지는 듯했다

부모의 마음은 다 같을 진데 죽지 말라고 찾아와 말렸는데도 남편을 따라간 사랑하는 딸을 생각하며 얼마나 통곡하고 이 비문을 쓰시면서 얼마나 애통했을까 ㅡ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 가슴이 저렸다.


글을 쓰며 공부해 보니

ㅡ김한신과 화순옹주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김한신이 죽으며 그의 맏형에게 셋째 아들을 양자로 줄 것을 부탁했고 그래서

김이주를 양자로 ㅡ 그의 아들이 김노경 ㅡ또 그 아들이 김정희ㅡ 이렇듯 대를 이어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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