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파란 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명화 Apr 01. 2023

경주에 가지 못한 신라 경순왕릉

왕릉 가는 길
비각
글자가 지워진 비 앞면
비의 뒷면
아직도 인부들이 왕릉 보수 중

연천 경순왕릉에 가 보기로 했다

연천에 강연하러 왔다가 경순왕릉을 찾아보기로 했었는데 시간이 촉박하여 와보지 못했었다

사적 제24호인 신라 경순왕릉이 왜 연천에?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은 국운이 기울어 제대로 세워보려 노력했지만 귀족들의 권력다툼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을 보고 세자인 마의태자의 반대에도 전쟁 없이 나라를 고려 왕건에게 넘겨주었다

왕건은 그를 낙랑공주와 결혼시켜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 경주를 관리하게 했다

경순왕이 죽자 운구행렬이 경주를 향해 가고 있을 때 고려왕실에서 왕릉은 개경 100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막았는데 속내는 경주에 운구행렬이 도착하면 백성들의 동요가 있을까 염려하였다 한다

결국 경주에 가지못한 경순왕은 연천의 고랑포리 성거산에 잠들게 된 것이었다

왕릉을 돌아보다 묘비를 보니 글자가 한자도 보이지 않고 깨끗한 돌이었다

궁금해서 묘지 입구 해설사님께 물어보았다

그분의 설명에 의하면 이 가까이 초등학교에 교장선생님께서 동내를 돌아보다 빨래터를 지나게 되었는데 아낙네들이 빨래판으로 쓰고 있는 넓고 평평한 돌이 예사롭지가 않아

학교에서 일하시는 분께 부탁하여 그 빨랫돌을 옮겨와 창고에 넣어 두었다 한다

그 무렵 이 부근의 부대에서 한자를 읽을 줄 아는 일병이 물을 뜨러 왔다가  골짜기에 묻힌 묘비석을 발견하였는데 순왕릉 이라는 글자가 보여 부대 상관에게 알렸다 

이곳은 6.25 전쟁 때 가장 치열한 전투지중 한 곳으로 지형이 무너져 변한 지뢰밭으로 금지구역이어서 벌 받을 것으로 걱정하고 있었는데 부대에서 더 윗선으로 보고했고 그로 인해 문화재관리 하시는 분들이 와서 보고 경순왕릉임이 확인되었다

작은 동네가 떠들썩했고 마침 교장선생님이 그 소식을 듣고 그들을 찾아가 학교 창고에 빨래터의 큰 돌을 옮겨 놓았는데 아무래도 묘비석 같다고 전했고 그들은 이 돌을 서울로 가져가 적외선 촬영등을 통해 경순왕릉 묘비석이라고 의견을 모았으나 오랜 시간 빨래판으로 쓰였기에 글자가 다 사라졌지만 묘비석으로 인정하였다는 이야기였다

앞뒤로 돌아보아도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았으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생김이 틀림없는 묘비석인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사연도 많은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

죽어서도 신라왕 중 유일하게 경주에 가지 못한 것도 슬픈데 이곳 계곡이 6.25 전쟁 때 가장치열했던 전투지중 한 곳으로 묘지가 거의 파손되고 묻혔던 것이라며 지금도 공사를 계속하고 있는데  전쟁 중 묻혀버린 묘지를 높이고 다듬는 일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해설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난의 삶을 타고난 것 같은 왕의 팔자가 죽어서도 난을 당했구나 라는 측은지심을 안고 바라보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구려 호로고루 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