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가족들이 명절을 즐기고 있었고 혼자인 나는 성벽에 붙어 서서 하모니카를 불며 고향생각에 젖어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서산의 해는 붉은 노을을 품어내며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듯했는데 들려오는 목소리
ㅡ아주머니! 날이 어두워졌습니다ㅡ라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깜깜한 산속에 그 많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고 달은 산 위로 둥실 떠올라있었다
순간 두려움에 아까의 목소리를 찾았지만 아무도 없어 한복자락을 부여잡고 산속 큰길 쪽으로 뛰었다
길 저만치에 걸어가는 모습이 보여 열심히 따라갔는데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따라잡기가 힘들어 큰소리로 불렀다
ㅡ아저씨! 아저씨!ㅡ
그는 걸음을 멈추었고 다행히 그분을 따라 함께 걸어 그 산길을 내려왔고 그분은 힘드셨을 터인데 음료수라도 드시고 가시라며 환타를 사서 건네주었다
이 인연으로 어렵게 부탁드린 명절이라 고칠 수 없었던 우리 원의 부러진 책상다리를 고쳐주셨는데 그 모습이 깊이 박혔나 보다
우리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그 후 난 물었다
아주머니! 날이 어두워졌다고 왜 했는지 ㅡ
결국 그 한마디가 우리를 만나게 해 주었기에 몹시 궁금해서 ㅡ
그의 대답은
추석달 촬영을 위해 남한산성 성곽에 올랐다가 저 앞에 푸른빛의 여인을 보고
언젠가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죽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말 한마디만 걸어주면 죽지 않는다고 하셔서 그때가 비행기 폭파사건이 있었던 때라 미망인이 그곳에서 뛰어내리려 하면 죽지 말고 살라고 아님 하얀 한복이 달빛에 푸른빛을 내고 있어 귀신인가 싶어 빨리 도망가고 있는데 그 귀신이 자꾸만 따라오더라고ㅡㅡ
우린 이렇게 만나 세상에 단 둘 짝꿍이 되었다
그 세월이 40주년의 날들이 휘리릭지나 머리에 서리 내렸지만 늘 변함없는 배려와 사랑으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가 되어 살아온 날들이었다
물론 고생도 많이 했지만 배려의 사랑은 그 모든 것을 감싸 안을 수 있어 그마저도 행복했다
어제 12월 5일은 40주년일
드라이브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서로에게 행복한 삶의 날들이었다고 서로에게 감사하며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