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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명화 Feb 04. 2024

입춘날의 추억

오늘은 입춘

봄의 문을 열었다

짝꿍은 지난 추억 자락을 펼쳐놓는다

입춘날 아침이면 아버님이 부르셨단다

다섯째야! 이리 오너라ㅡ

아버지의 부름에 사랑방으로 건너가면 방안에는 가즈런히 준비해 놓은 한지더미와

커다란 벼루 위에 놓인 큼지막한 검은 먹이 어서 오라는 듯 반기지만 벌써부터 팔이 아프고 다리도 아파올 것 같았다고ㅡ

아버지는 어서 앉아 먹을 갈라시고 작은 손으로 큰 먹을 들고 가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는데 애써서 먹을 갈아 놓으면

큰 붓으로 여지없이 먹물을 듬뿍 찍어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 일필휘지로 쓰시면

형들은 그걸 조심스레 가져다가 작년에 붙여놓은 글 위의 먼지를 털고 그 위에 다시 새로 쓰신 글을 붙였단다

팔이 빠지도록 먹을 갈지만 먹물이 고이면

우여 남산호 마사북해룡을 또 쓰시고는 외양간 대문에 붙이라 명하시고 아홉 칸 집 기둥마다 아버지 쓰신 글을 형들은 붙이기가 한나절이 다 지나노록 계속되었는데 팔이 너무 아프고 다리도 저려서 먹물을 푹~찍으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먹물을 좀 아껴 쓰시지 왜 큰 붓으로 푹 찍어 쓰시는지 작은 붓으로 조금씩 쓰시지ㅡ라며 원망을 했다며 이제는 추억이 된 아버지가 오셔서 오늘 입춘 날인데 다시 먹을 갈라시며 자식들 앞에서 자랑스레 일필휘지 하시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그때가 그리운가 보다

시가에 가면 언제나 붙여있던 이곳저곳의 큼지막하게 잘 쓰인 글들이 아버님의 솜씨라는 얘길 듣고 감탄했었는데 오늘 짝꿍의 추억을 들여다보며 그날의 모습을 나도 그려본다

입춘 날이면 여섯 아들을 불러 각기 일을 나누어 주시고는 하얀 한지에 당신의 붓글씨 솜씨를 어쩌면 자랑스레 자식들에게 보이며 우리의 풍습을 교육시키신 게 아닐지 ㅡ

입춘날이지만 설 명절이 코앞이다

짝꿍의 추억여행에 나도 함께 들어갔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에 시가에 가까이 가면 차소리를 들으시고는 앞마당에 나오셔서 어서 오너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ㅡ

ㅡ에미야 야들 어서 밥 차려 주어라ㅡ라시며

큰 형님을 부르시던 시아버님의 그 모습 너무 그리워 가슴이 울컥하며 코끝이 찡해지는 입춘날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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