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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한명화
Dec 04. 2024
독립운동가 서재필 선생
개화문
독립문
선양관
국내 대한민국장 서훈자 25인
국외 대한민국장 서훈자 5인
자홍문
송제사
자필 병풍
생가 입구
서재필의 생가 (외가)
선생이 태어난 외가의 초당
전라남도 보성에 서재필선생의 기념공원에 가 보았다
입구에 커다란 개화문이 턱 버티고 있어 겸허해진 마음으로 들어서니 옆으로 서울의 독립문과 같은 크기의 독립문이 우뚝 서 있다
서재필 하면 먼저 떠오르는 독립문을 같은 크기로 이곳에도 설치하여 독립문 앞에 서서 만세 삼창을 외쳐 보고 선양관으로 향했다
선양관에 들어서니
ㅡ
선양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인사글이 참배객을 맞이한다
선양관에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독립유공자로 대한민국장을
서훈
받으신
30인의 공적을 기록하며 30인의 사진을 걸어두었는데 그중 한 분은 사진이 없으셨나 보다 무덤 사진이 걸려있어 마음이 짠했다
사진을 향하여
나라를 위해 애쓰신 참된 애국정신에 감사를 드리는
묵념을 올린 후 인사를 올린다
ㅡ당신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ㅡ라는
선양관을 나와 자홍문을 지나 그의 사당인 송제사에 가서 사당에 모셔진 초상화를 보며
나라를 위해 큰 일을 많이 하심에 감사했다
이제는 기념관에 들러 그의 활동상을 돌아보았는데 4개의 전시실로 나누어 전시되고 있어서 깊이 있게는 몰랐던 서재필선생의 애국 애족 정신의 깊이에 더더욱 감사하며
그가 태어난 생가를 향했다
차로 조금 달리니 생가의 동네
생가는 그의 어머니의 친정으로 선생은 외가에서 태어나 7세까지 그곳에서 자랐다고 하는데 후일 성인이 되어서도 종종
외가에
대한 그리움을 말했다 한다
서재필을 기억하다
ㅡ
1884년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과 갑오개혁을 주도하였으나 실패로 부모님과 아내는 자결하고 아들은 굶어 죽었다
ㅡ
그는 미국으로 망명 의학을 공부하여 우리나라 1호 의사가 되었다
ㅡ
1895년 나라의 부름으로 귀국 중추원 고문에 임명되었고 최초의 한국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조직했다
ㅡ굴욕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 걸립
ㅡ반대파의 등살에 1989년 다시 도미
ㅡ1919년, 3.1 운동 소식에 구미 한인회를 결성 임시정부 구미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전재산을 독립자금으로 바침
ㅡ1977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됨
ㅡ1994년 미국에 계시던 유해를 모셔와
국립묘지에 안장함.
서재필
선생
을 기억하자고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어젯밤
계엄령
선포와 오늘 새벽 계엄해지라는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셨던 애국지사들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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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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