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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다릴께

김옥균선생의 유허

by 한명화
고군분투하고 김옥균 선생 추모비

유허? 유허라니

그 의미를 찾아보니

ㅡ 역사적 의미를 지닌 장소

역사적 인물이 살았던 옛터

김옥균선생의 유허를 찾았다

이곳은 김옥균선생이 태어나서 실았던 곳으로 10여 가구가 모여사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모두 불타 없어졌고 빈터만 남았다

왜 불이 온 동네를 삼켰을까?

혹시? 김옥균의 갑신정변 불발로?

그럴 수도 있겠다라며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 옥균선생 유허를 찾았을 때 풀이 무성한 터 가운데에 외롭게 우뚝 서있는 비 하나는

김옥균선생 추모비였다

옛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만났던

ㅡ갑신정변의 주역 김 옥균

ㅡ1851년 10월 20 일생

ㅡ1872년 문과급제 이조참판까지 이름

ㅡ1884년 12월 3일~12월 6일 (3일 천하)

ㅡ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홍영식

ㅡ문벌폐지, 인민평등권확립, 재정개혁

ㅡ1894년 향년 47세에 암살

쪽지 시험이나 ( ) 넣기 시험을 위해 줄줄 외웠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다


그들은 고종 21년인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을 일으켜 정부를 수립하고 개혁을 추진했지만 청나라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

일본으로 망명했지만 일본에서도 그를 추방하였다

고종 31년 1894년 상해 방문 때 조선에서 보낸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되었고 청나라에서는 그의 시신을 조선에 보냈는데 그의 시신은 능지처참되었다

그가 암살된 지 4개월이 지나 갑오개혁으로 개혁파 정부가 수립되면서 반역죄가 사멸 1910년 규장각 대제학으로 품계를 받았다

갑신정변에 실패하고 십 년 가까이 피신하며 살았으나 암살된 지 불과 4개월 후 그렇게 소원했던 개혁파 정부가 수립된 것을 보면

비운의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추모비는 유허에 있는데 그의 무덤은 어디에? 글을 쓰며 찾아보니 동경 청산묘지 (도쿄 아오모리 영원묘지)에 있다고 한다

그의 묘비 뒷면에 박영효가 지었다는

아아!

비상한 재주를 품고

비상한 때를 만나

비상한 공도 없이

비상한 죽음을 맞았구나 라는 글이 있다고


시대마다 역사의 흐름 속에 불합리함을 외치는 자들의 목소리가 변화를 추구하고

그들의 피의 값으로 얻어지는 백성들의 삶이 한 걸음씩 향상되어 오고 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김옥균선생 추모비 앞에 서서 차별 없는 이상의 나라를 실현하려는 젊은 선비의 외치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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