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기다릴께

가을비 편안함으로

by 한명화

길도 없이 우거진 숲길로 선산 오르는 길

낫으로 베고 발로 밟으며 뒤에 오실 형제들 생각에 길을 내며 헤쳐나갔다

형제들은 고향을 거의 떠나고 조카가 지키며 살기에 이 길을 먼저 터놓기는 힘들었을 것

힘들게 헤쳐간 선산에는 잔디를 뒤덮은 풀들에 묻혀 어디가 산소인지 구분도 없다

먼저 도착한 짝꿍은 예초기로 풀을 베기 시작한다

그 뒤를 따라다니며 누워있는 풀을 갈키로 끌어 한쪽으로 걷어 냈다

건강 문제로 오랫동안 참여하지 못한 미안함에 짝꿍은 열심히 벌초를 하고 있다

한 시간쯤 지나 형제들이 합세하고 아래쪽 산소들의 벌초가 끝나고 위쪽의 산소에 또 올라 모두 함께 열심히 벌초를 하고 주변의 나무들도 톱과 낫으로 정리를 하는 걸 보며 역시 자손이 많으면 이렇게 든든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여유가 생긴 나는 여기저기 부르는 초피열매를 따서 주머니를 가득 채웠다

윗대 조부모님 묘소, 조부모님 묘소, 삼촌들 묘소, 큰 형님 내외분의 묘소등 묘기도 많고 좌판도 넓고 주변정리도 넓었지만 다섯 형제들과 조카가 합세하니 오전 중에 끝났다

아들, 손자, 형제가 와서 저리 깨끗하게 벌초를 하고 제를 올리는 모습을 보시고 계시다면 얼마나 흐뭇하실까

벌초를 마치고 내려오며 나눈 얘기는?

ㅡ예전에는 자식을 많이 낳아 이런 벌초가 가능하지만 현대는 결코 매장문화를 반길 일이 아니라고 ㅡ

ㅡ자식이 하나, 둘인데 관리할 수 있겠느냐고

ㅡ요즘의 화장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금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이 비를 피해 어제로 앞 당겨 벌초를 했고 벌초 가는 길에 그 경이로운 동해의 해돋이를 선물 받았는데ㅡ

거실에 앉아 가을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며 흐뭇하고 편안함이 마음 가득 차 오른다

올해의 벌초를 형제분들과 즐겁고 행복하게

마치고 왔기에ㅡㅡ.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랑은 이런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