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아저씨의 집에서 벗어나 우리가 향한곳은 어디였을까?
그 새벽에 다시 발걸음을 옮기던 젊은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자신의 삶이 어쩌면 고달프고 외롭고 힘든 여정이지 않았을까
누구하나 기댈 곳 없는 곳에 어린 자식하나만 자신의 옆에 있을 뿐이고, 어머니 또한 나의 부모이기전에 한 사람의 개체로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나아지기보다 더 현실적으로 치열하고,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그림자에 숨어 생명부지라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매번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채 새벽에 길을 나서야 하는 현실이 원망스럽고 어머니도 두려웠을 것이다.
우리가 살기 위해 정착한 곳은 겨우 방한칸 딸린 큰 기사식당 이었다.
주방 곁 사이로 사람이 쉬고 잘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아마 식당 주인은 어머니의 딱한 사정을 고려해 그 방을 내어주었을 것이다.
그 기사식당은 꽤 컸다. 건설현장 같은 곳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 작업복을 입고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었다.
백반부터 시작해서 가볍게 라면까지 먹을 수 있는 식당이었다.
어머니가 일을 할 동안 나는 유치원을 가거나 유치원에 다녀오면 그 방한칸 딸린 곳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보내었다.
어머니의 일은 밤 10시까지 이어지는데 그 시간이 되어야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 올 수 있었다.
어머니는 늘 밤늦게 밥을 드시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나도 옆에 앉아 밥을 더먹곤 했다.
사실 나는 어머니보다 밥을 일찍 먹곤 했는데 어려서부터 먹는것에 욕심이 있었는지 매번 식당 뒤켠에 있는 밥공기를 가지고와 먹곤 했다.
어머니는 늦게 먹는다고 나무라하진 않고 오히려 같이 먹을 수 있게끔 했다. 그래서인지 살이 조금씩 찌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한 날은 기사식당이 영업을 잠깐 쉬기로 한날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목욕탕을 갔다온 날이기도 하다.
목욕탕을 갔다왔는데 속이 너무 좋지도 않았다.
그래서 식당안을 배회하며 걸어다니다 어머니가 잠깐 외출한 사이에 몰래 음료수를 하나 꺼내먹었다.
사실 어머니가 나가기전에 아저씨들이 와서 음료수 드시면 까만 노트에 먹은걸 기록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나갔는데 오는 아저씨는 없었고, 속이 안좋았던 터라 내가 꺼내먹고 식탁위에 올려놓았다.
돌아온 어머니는 누가 왔다 갔냐며 물었는데 우물쭈물 하다 내가 먹었다고 실토를 해버렸다.
혼나지는 않았지만 어린 마음에 혼날까 싶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기사식당에 자주오는 아저씨들이 많았다.
건설쪽에 임하는 아저씨들은 늘 아침과 점심을 해결해야 했기에 계약된 식당에서 먹는것이 일반적이라 거의 보던 사람들만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일하시는 분들과 주인과도 안면이 많았기에 한날은 다같이 밥을 먹고, 노래방을 갔다.
나도 어머니를 따라 어른들과 함께 노래방을 따라갔는데 그 모습이 선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아저씨들 아줌마들 한데 어우러져 다들 기쁜 얼굴로 춤추고 노래하며 놀고있었고, 어머니가 낯선 아저씨하고 춤을 추며 노는 모습이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나한테는 인형이 하나 있었는데 아줌마들 틈에서 잠들다가 양말 한짝을 잃어버린적이 있다.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양말 한짝이 도무지 나타나지 않아 얼마나 서럽던지 그 인형은 아마 발가벗겨진 발 한쪽이 시려웠을 것이다.
그 인형은 내가 늘 들고 다녔는데 그 인형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도 모른다.
방 한 켠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이불위에 털썩 주저 않았는데 그 이불 틈에 큰 바늘하나가 꽂혀 있었는지
내 작은발에서 시뻘건 피가 흥건히 쏟아져 나왔다.
바늘이 발에 반쯤 박혔고, 놀라움과 아픔에 큰 소리내어 울었다.
밖에서 일하던 어머니는 나의 울음소리가 들려 들어오더니 무슨 일이냐 물었다. 나는 발음조차 잘되지 않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발을 보여주었다.
어머니는 황급히 바늘을 빼내고, 피에 젖은 발을 닦아 주었다.
대체 왜 그 큰바늘은 이불위에 꽂혀 있던건지 참 운도 없었다.
유치원을 다녔을 때 꼭 한달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간식을 사오는 날이 있었다.
그날 어머니는 초코파이하고 요구르트를 한무더기 사서 보내줬는데 그날 따라 내 어깨가 으쓱했던 날이었다.
어머니는 사는것이 힘든데도 불구하고 이런것들은 하나하나 다 챙겨주었다.
어머니와 마트를 가며 길거리에 울려퍼지던 클론의 쿵따리샤바라 빠빠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살짝살짝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았고, 즐거웠다. 여전히 내 머리속에 남아있는 행복한 일 중 하나이다.
나는 이 큰 기사식당에서 살면서 아침에 일어날때마다 이불에 오줌으로 지도를 그렸다.
그래서 맨날 어머니가 이불 빨래를 해야 했었다.
사실 나도 이불에 오줌을 싸고 싶지 않았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늘 아침만 되면 이불이 오줌으로 젖어 있었다.
매번 어머니에게 혼나면서도 나의 오줌지도는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도 어린아이라서 유죄라기보다 무죄에 가까운 헤프닝 같은거였다.
늘 혼자였기에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도 외로움도 컸을 것이다.
유일한 친구였던 텔레비전속 치토스 과자봉지에 있던 치타와 닮은 만화와 가제트 형사를 보는게 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게도 따뜻하고 인자한 늙은 친구가 생겼다.
그 늙은 친구는 내가 갈때마다 반겨주며 늘 자석 진주 귀걸이를 선물로 주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 가장 어린시절 따뜻했던 낯선 사람이자 그리운 사람이다.
어릴 때 보고 들었던 잔재들이 어른이 된 나의 머릿속에 잔재처럼 남아있을 때
그 형체들을 되살려 눈,코,입 까지 완벽하게 구현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것들은 안타깝게도 그저 느낌만으로 기억날뿐
그 얼굴들은 전혀 기억나질 않는다.
마치 얼굴없는 사람들 속에 잠시 내가 꿈을 꾸고 돌아온 기분이랄까
늙은 내 친구도 그저 나이많은 사람이란것만 기억할뿐 나는 지금도 그 모습을 떠올릴 수가 없다.
가장 슬픈것이 좋은 사람을 잊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곁을 떠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