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집을 떠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끌려온 곳은 낯선 대문집 앞이었다.
튼튼한 철제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이 딸린 큰 집이 하나 나왔다. 현관까지 가려면 5~6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했고, 그 시절엔 그렇듯 용같이 생긴 문양의 두꺼운 문을 열면 현관이 나온다.
그 현관을 벗어나면 넓은 거실과 주방 3~4개의 방들이 나왔다.
거기에는 낯선 아저씨와 언니가 있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땐 내가 이미 이 집의 적응이라도 된듯 이 집안을 휘적고 다녔다.
언니의 방에 들어가면 아기자기하고 예쁜 물건이 많았다. 그 중에 형광색색의 휴대폰 고리 끈들이 있었는데 그걸 가지고 놀다가 살짝 혼난적도 있었다.
다시는 자기방에 들어오지 말라는 차가운 말투였다.
사실 그땐 너무 어렸기에 그 언니의 존재에 대해서 크게 생각치도 못하고 단지 한 집에 같이 있던 사람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언니의 일상에 낯선 모녀가 들어와 살았던 것인데 그게 얼마나 불편하고 싫은 순간이였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언니는 그때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쯤 되보였다.
어머니는 그 주방에서 이웃 아주머니와 대화를 하며 평화로운 한때를 보냈고, 그 시간속에 나는 어머니에게 코코아를 타달라며 조르던 모습이 생각난다.
달콤한 초콜릿 향기가 혀를 자극하면 세상 남부러울 것 없이 나는 행복했다.
나는 늘 아저씨와 어머니 중간 사이에서 잠을 잤다.
아저씨는 호리호리한 편이었으며 내게 한없이 다정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낯선 아저씨와 언니가 있는 집에서의 기억은 나름 좋았던 것 같다.
거실에 있던 베란다 중문을 열고 나가면 테라스 같은 공간이 놓여있는데 거기에서 신문을 깔고 둘러 앉아서 고기를 구어먹었다.
이른 저녁이라 바람도 솔솔부는 초여름 날씨였던 것 같다. 아기새 마냥 엄마가 조각조각 내준 고기를 받아먹으며 그 집을 돌아다닐때의 기분이란 그리 좋을수가 없었다.
고기를 다먹고 치운 테라스에선 어머니의 무릎에 기대어 누워있으면 어머니가 머리를 쓸어내리며 나의 잠을 재촉시켰다.
그 순간만큼은 그리 행복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나
셋이서 나들이를 간적이 있다.
아저씨는 나에게 목과 어깨를 내어주며 목마를 태워 주셨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으며 아주 높이 올라가있구나 말을 하며 넌스레를 떨며 지나가셨다.
아저씨와 어머니의 모습에는 미소가 보였다.
아저씨가 태워준 목마를 탔을때 신난다라는 생각보다 뭐랄까 다른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그 나이때 목마를 태워주면 신나서 더 해달라고 하던데 나는 부끄러움이 좀 많은 아이라서 그런지 그리 신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애꿎은 아저씨 머리카락만 꼭 움켜쥐며 못살게 굴었다.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저씨 사이에서 잠을 자고 있던 때 시끄러운 소리에 나는 깨버렸다.
새벽 시간대였는데 둘이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무엇때문에 싸우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 싸움 뒤로 나는 또 다시 갈색의 짐가방과 함께 어머니의 손을 잡아야 했다.
우리 모녀는 왜 매번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하는지 모르겠다.
새벽이라는 그 그림자속에 모녀가 걸어가는 그 길에는 따뜻한 길목이 아닌 차가운 앞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나의 어머니는 매번 새벽길을 택해 늘 누군가에게 뒷모습을 보이며 떠나야 했을까
왜 그 아저씨와도 헤어짐을 선택했어야 했을까
어머니는 왜 그 어디도 정착하지 못했던 것일까